2024년 12월 13일 금요일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미사 강론
TV 만 틀어도, U TUBE만 켜도, 여기저기 오만 때만 곳에서 한 사람의 이름과 한 정당의 이름이 들려온다. 안 그래도 사는 게 힘들어 죽겠는데, 성당에 와서라도 힘든 마음 잠시나마 내려 놓고 싶은데, 이놈의 성당마저도 그렇게 해주지를 않으니, 도대체 나는 어디 가서 위로 받고 살까 하며 성당에 왔다가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사람들이 분명 계실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기묘하다. 해마다 읽는 대림시기의 모든 독서와 복음은 정의와 평화, 이 단어들로 꽉꽉 채워져 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할 단어들, 그래서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다시금 생각해야만 할 단어들이 사람 속을 후벼 파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오늘 복음 말씀은 더더욱 그러하다: «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추위 때문에 삭막한 요즈음, 현 시국 때문에 더 괴롭고, 더 힘들고, 더 외로운 요즈음이다. 요즈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협조 자세,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즐겨 사용하시는 단어로 표현하면, ‘연대’다.
우리 이제는 더 이상 그놈이 그놈이라느니,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느니, 하는 식의 말을 하지 말자. 다음 번에 표 안주면 그만이지 라는 말도 하지 말자. 세상 천지 어느 나라에서 국민이 정치인에게 투표하라 독려하는 경우가 있단 말인가? 그들이 포기했던 그 한 표는 우리 국민들이 그들을 믿고 찍어준 한 표 덕분인데, 그 한 표의 무거움을 알지 못하는 것들에게 국민이 내려야 할 것은 다음 번에 표 안주면 그만이라는 말이 아니다. 다시는 정치판에 발을 디디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는 눈빛을 보낼 때, 그 눈빛을 애써 무시하지 말자. 아이들과 젊은이들과 시민들이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들고,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춤추고 즐기는 것에 함께 동참하지 못할지언정, 냉소를 보내지 말자.
« 제가 정치인인가요 ? 왜 거기 관심을 가져야 해요 ? »라는 한 유명한 가수의 골 빈 말에 현혹되지도 말자. 이런 태도는 시민 기초 소양이 부족한 것을 반증하는 짓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성당에서 제발 정치 얘기하지 말라는 말도 하지 말자. 그런 말은 결국 나는 신앙 따로, 삶 따로 산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강론 때에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무얼 얘기하라는 것인가? 하느님 제대로 믿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비로소 체험하는 참된 신앙의 삶의 시작이니, 끝까지 하느님을 믿으며 사는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그렇지 않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갈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한때나마 그를 지지했고, 그의 정당을 지지했다 하더라도, 그 지지는 헌법을 지켰을 때까지의 지지일 뿐이다. 헌법을 파괴하고, 헌법을 유린한 자, 그리고 그러한 자를 두둔하는 자는 더 이상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의 소양도, 자격도 없는 무국적자, 난민에 불과하다.
애써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아무런 표정 없는 냉담한 얼굴로, 세상 다 산 얼굴로 지금의 이 때를 지낸다면, 2천년 전 오늘 복음의 예수의 말씀은 또 한번 재현될 것이다: «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
오늘 복음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