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7일 토요일 성모신심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지만, 열 번을 찍어도 꿈쩍하지 않는 사람은 있다. 불통, 외고집, 고래심줄, 불변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그런 사람인 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분명 들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누구인지를.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우리 곁으로 오셨다고, 하느님은 당신 스스로를 이렇게나 낮추셨다고 하는 증언들로 가득 찬 성경이지만, 그 성경을 읽고 들으면서도 하느님이 그리 하셨으니,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기 보다는 그저 강 건너 불을 보듯, 구경꾼의 시각으로만 남아 있는, 그럼에도 자신은 « 믿는 사람 »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나는 그런 류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고 박박 우겨대는 사람들은 차라리 낫다. 문제는 자신이 그런 류에 속해 있음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을 때,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맞이하는 자세는 « 회개 »뿐이라고, 삶의 태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라고 부르짖었던 세례자 요한과, 하느님이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 때가 차서 하느님 나라가 왔습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믿고 회개하시오 »라는 일성으로 세례자 요한과 결을 함께 했던 예수님이셨지만, 세례자 요한은 목이 잘려 목숨을 잃었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목숨을 잃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우리 곁으로 오시지만, 세상 사람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그런 것은 하느님 전문가들이나 챙길 일이고, 우리는 쌀쌀맞기 그지 없지만, 지켜야 할 도리 밖에 없는 율법 때문에라도 그분을 맞이할 수 없다는 냉혹함은 시대와 장소를 떠나서 여전히 인간의 세계에서 횡행하고 있다. 

       마리아와 요셉이 베틀레헴을 찾았을 때,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고, 해산할 날이 다가와 있었다. 몸 풀 방 하나 없었다고, 여관방 하나 없었다고, 그래서 결국은 짐승들이 사는 헛간에서 아기를 낳을 수 밖에 없었다고 복음은 말하지만, 정말로 몸 풀 방 한 칸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여자가 집 안에서 아기를 낳으면, 그 집안의 모든 사람들은 50일동안 바깥 출입을 통제당한다는 율법 때문에 마리아와 요셉을 맞아들이기가 참으로 난처했음을 복음서는 애써 숨기고 있다. 

      
아무리 악법이라도, 법을 어기면 범법자가 되겠고, 법을 어겨서라도 마리아와 요셉을 맞아들이자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선뜻 선의를 베풀지 못한 이들은 헛간이라도 내어 줄 터이니 거기에서라도 몸을 풀라고 했을 것이다. 헛간만이라도 내어 준 사람들이 그 헛간에서 탄생한 아기가 구세주였음을 훗날에라도 알았더라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 

    « 그런 줄 알았나 ? » 이러지 않았을까 ? 마치 요즈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말하듯 말이다 : « 그런 일을 할 줄 알았나? 그런 줄 알았으면 안 찍었겠지 ». « 오죽했으면 저랬겠나 ? »

반성도 성찰도 없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또 그렇게 시간만 지나면, 잊혀지겠지 하는 심보, 참으로 무책임함의 극치요, 불통, 외고집, 고래심줄의 또 다른 모습이다. 

    
구세주를 낳았던 어머니조차도, 자신의 아들이 미쳤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아들 하나 살리려 온 가족을 이끌고 아들이 일한다는 곳으로 달려가 뜯어 말리려 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바로 그때, 그 아들은 «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이고, 내 누이요 ?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내 누이요, 내 어머니요 »라고 했다. 

   
이 말씀 하나에 어머니였던 그 여인은 삶의 변화를 이루려, 회개하려 온힘을 다 기울이고, 온 정성을 다 했을 것이다. 당신의 아들이 내란죄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을 당하고, 그 제자들도 부역자들이 되었을 때, 그 여인은 그 제자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는 복음서의 증언은 이 여인의 회개를 입증한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이러한 수모를 겪었음을 감지할 줄 아는 것이 깨어있는 신앙이다. 잘못을 저질렀음을 시인하고, 그 잘못으로 인한 피해를 기워 갚으려는 노력 역시 깨어있는 신앙이다. 

     
오늘 우리가 들었던 복음은 구세주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이 탄생이 펼쳐낼 갖가지 사건들에 대해서 우리의 이해의 지평을 넓혀서 오늘 복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 오늘 복음은 우리들로 하여금 결국 신앙인의 정체와 신앙인의 자세와 소명과 사명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됨을 알아차리라고 우리를 종용한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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