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5일 목요일 최옥선 마리아 할머니 장례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장수를 누리다가 세상을 떠나신 분들의 유가족들에게 사람들은 유가족들을 위로하느라 호상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할머니와 이 지상에서는 더 이상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을 하게 된 유가족들에게는 할머니의 선종이 슬픔으로 다가올 것이다. 호상이라는 말은 그래서 가급적 사용하지 말아야 할 단어다. 본당 신부로서 유가족들에게 삼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면서 그 슬픔을 함께 나누고 싶다. 더불어 살아 생전, 할머니의 인품과 그 삶을 기억하면서 할머니가 가시는 인생의 끝을 함께 송별하고자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신자분들과 조문객 여러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사후황금주북두(死後黃金柱北斗)라도 불여생전일배주(不如生前一杯酒)” 라는 말이 있다. 죽은 뒤에 황금을 북두칠성까지 닿도록 쌓는다 해도 생전에 드리는 술 한잔만 못하다는 말이다. 할머니는 5남1녀를 낳으셨고, 살아 생전에 자녀들과 손주들로부터, 또 며느리들과 손주며느리들로부터 한 잔만이 아니라 효성 가득한 사랑의 술잔을 받으셨으니 참으로 행복했을 것 같다.

     
마리아 할머니는 병자성사도 받고, 종부성사도 받으셨다. 돌아가시기 전, 종부성사를 받을 때에는 나와 크리스티나 수녀님을 알아보고는 « 아이고 »를 연발하셨다. « 아이고 신부님 고맙습니다 », « 아이고 수녀님 고맙습니다 » 한 두 번도 아니고, 나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수녀님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계속 해서 « 고맙습니다 » 라는 말씀을 하셨다. 

   
희한하게도 나는 23년 넘게 사제로 살아오면서, 종부성사를 해드릴 때면, 돌아가시기 2-3일 전, 종부성사를 받는 분에게서 특유의 냄새를 맡는다. 마리아 할머니가 오늘을 넘기기가 어렵다고 의료진이 말하니, 종부성사를 해달라고 따님인 세레나 회장님으로부터 긴급한 전화 연락을 받았을 때에 할머니의 몸에는 열이 있긴 했지만, 특유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2-3일은 더 괜찮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할머니는 종부성사를 받고도 열흘 넘게 살아계셨다. 그리고 지난 주일 오후, 당신의 101년 생을 마치셨다. 

   
세상을 살아 가면서, 슬픔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마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은 살을 도려내는 아픔보다 더한 아픔을 주기도 한다. 마리아 할머니가 장수를 누리셨다고 하더라도, 할머니와의 이별은 분명 슬픈 일이다. 하지만, 너무 슬퍼하지는 말자. 할머니가 돌아 가신 세상은 우리도 언젠가는 가야 할 곳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 곳에서 다시 만나는 기쁨을 나누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는 것이 그저 헤어지는 슬픔으로만 머문다면, 할머니가 하느님의 품 안에서 평화를 누리게 하기 보다는 할머니의 발목을 잡아 이 땅에 묶어 두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유가족과 많은 신자들이 장례미사 때에 흘리는 눈물의 진정한 의미는 돌아가신 분과 같이 우리들도 언젠가는 하느님 앞으로 불려갈 죽어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눈물이요, 생전에 돌아가신 분에게 소홀히 해드린 모든 잘못을 생각하며 마음 아파하는 통회의 눈물이다. 오늘의 눈물은 그래서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죽을 모습들을 새롭게 생각해보고, 할머니의 삶을 본받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그리고 유가족 여러분,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하느님 앞으로 불리움을 받게 될 그날이 닥쳐 올 것이다. 그러나 그날이 올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머리를 들고, 허리를 세우라고 하셨다. 100년을 채 못 사는 것이 인생이다. 물론 마리아 할머니와 같이 예외도 있긴 하다. 하지만, 100년 편하자고, 죽고 난 후의 부활의 삶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100년을 힘들게 살더라도, 주님 앞에서 고개를 들고, 허리를 세울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지금의 이 세상을 정말 제대로 잘 살아가는 길이다. 

       마리아 할머니는 당신의 삶 전체를 통해서 이것을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사랑과 그분의 수난과 죽음 뒤에 찬란한 부활의 영광이 있음을 할머니는 믿으셨고,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을,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을 늘 간직하고 계셨다. 

    
할머니와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만남을 이루려고 하는 바로 지금, 우리가 할머니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할머니께서 살아 계셨을 적에 혹시라도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자비로이 용서하고, 할머니를 영원한 생명인 하느님의 품으로 돌려 보내드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마리아 할머니를 따뜻이 받아주시기를 간절히 청하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분명히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다. 

주님, 최옥선 마리아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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