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7일 연중 제33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우리는 삶 속에서 많은 것들을 기다린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여러분들도 대단히 많은 기다림을 체험하셨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 속에는 많은 기다림들이 있었으며, 이 기다림으로 인하여 우리의 인생은 탄력을 얻고 긴장을 지닐 수 있었다.
무언가가 올 것에 대한 기다림.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것들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무도 짜증 나는 것들을 기다리지는 않는다. 시험을 기다리는 학생이 거의 없고, 병고를, 눈물을, 이별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기다림 속에는 감미로움이 있고, 설레임이 있고 벅차 오름이 있다. 무언가를 대단히 고민하고 또 내가 어떤 준비를 해야만 참으로 그 다가올 무언가를 기쁘게 맞을 수 있을까...하는 깨어있음이 함께 동행하는 기다림이야말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올바른 기다림이다.
아무런 준비도 못했고, 대책도 없었던 것들... 아픈 것들, 울었던 것들, 서러웠던 것들, 그저 무턱대고 당하는 것,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들뿐이다.
과거에 오셨던 그리스도를 기다리거나 미래에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거나 우리는 똑같은 주님을 기다린다. 그분은 처음에는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고 마지막에는 이 구원을 완성하러 다시 오신다. 이러한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더없이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희망을 듬뿍 안겨 주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다리는 주님은 당신 스스로 약속하신 대로 현재에도 우리 가운데 계신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은 바로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 한가운데, 성체와 성혈 안에 그리고 미소한 형제들 안에, 지금 여기에 계신다. 절망스러운 상황들만 하루하루 겹쳐지는 어두움의 때에 그럼에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안에 계신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잘 맞이하려면,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시는 주님을 만날 줄 알아야 한다.
오늘 복음을 비롯해서 세상의 마지막에 대한 예수의 모든 말씀들은 세상 종말에 대한 무서움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종말에 대한 대비를 갖추라, 주어진 오늘, 바로 지금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그 땅에서 하느님께 충실하라는 말씀들로 귀결된다.
예루살렘은 예수의 말씀처럼, 기원 후 70년경에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의 종말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날, 소위 종말의 날은 오겠지만,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도 모르고, 사람의 아들도 모르고 오직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만이 아신다.
종말은 올 것이다. 분명히 올 것이다. 그러나, 그 종말은 세상의 파괴와 소멸을 목적으로 하는 하느님의 징벌이 아니라, 하느님을 외면한 무질서와 부도덕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하느님의 섭리다. 세상 종말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은 세상의 파멸, 세상의 박살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향대로 새로운 세계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파괴나 파멸에 대한 말씀들은 죄 많은 인간들과 세상이 겪어야 하는 진통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묵시적인 표현들, 세상 종말에 대한 표현들은 일차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잠에서 깨기를, 하느님에게서 눈을 돌리고, 등을 돌린 죄스러운 세상에서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사랑 가득한 회초리이다. 그러한 표현들은 하느님의 사람들이 세상을 점령하고, 세상을 하느님의 무한하신 힘으로 억누르고 통치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더럽고 추악한 세상에 대한 파멸을 조장하는 무기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쓰라리지만, 올바르지 못하고, 거짓과 악행을 일삼는 그 사랑스러운 자녀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회초리이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과 세상을 살리시기 위해 당신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고, 치욕스러운 죽음까지도 맞이하셨던 분이다. 언제 올지 모를 종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종말이 완성이니, 그 완성이 이루어질 것을 희망하고, 지금 여기에서의 내 삶이 그 완성을 이루는 데 필요한 벽돌 한 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경천하고 애인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 바로 이것이 진정 믿는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우리 김해성당의 모든 신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 생명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