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7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을 두고, 그저 하늘에서 툭 떨어진 말씀으로나 여기고, 성경의 말씀을 이 시대의 아픔과 슬픔과 함께 읽어내지 않는다면, 이는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박제화시키는 짓에 지나지 않는다. 하느님의 말씀을 박제시키는 일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웃고, 울고 계시는 임마누엘 하느님, 살아 펄펄 뛰노시는 하느님을 박제시키는 일, 결국 하느님을 질식사시키는 일이다.
  
       
오늘 우리가 들었던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은전에 대한 비유 이야기는 흔히 성당 다니다가 냉담하는 사람, 신앙을 저버린 사람, 신앙을 잃은 사람 등으로 여겨지겠지만, 각 시대에는 각 시대마다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은전이 존재한다.

       
우리 시대는 물질적인 풍요를 이룩한 시대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이 가진 사람, 더 큰 힘과 더 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우러러 본다. 학력이 높은 분들, 엄청난 부를 지닌 사람들,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나, 그런 권력들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겉으로는 절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보이지 않게 자신의 힘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존엄한 부류의 인간이라고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거기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잉여인간, 부실인간, 빌붙어 사는 인간 취급을 당하고, 별로 가치도 없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깨진 이, 짓밟힌 이, 부서진 이, 소외 당한 이, 바로 이들이 이 시대의 잃어버린 양이고 잃어버린 은전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은전을 찾기 위해, 온 산을 헤매고, 온 집안을 이 잡듯이 찾아 헤맨다는 것은 이 시대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더욱 더 편애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양 한 마리가 길을 잃게 된 이유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스스로 길을 잃어 버렸을 수도 있을 것이고, 시대에서 떨어져 나가려고 하다 보니 길을 잃어 버렸을 수도 있고, 나머지 아흔 아홉으로부터 버림받았기 때문에 길을 잃어 버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밝힌다고 해서, 길 잃은 양이 곧바로 되돌아 오는 것도 아니고, 그 양을 곧바로 찾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길 잃은 양에 대한 책임은 결국 목자와 나머지 남아 있는 아흔 아혼 마리의 양이 공동으로 져야 하는 일이다

         
길 잃은 양을 찾으려면, 그 양을 찾기 위해 울타리를 박차고 나와야 하고, 온 산을 헤맬 각오를 해야 한다. 누가 울타리를 박차고 나오고, 누가 온 산을 헤맬 것인가 ? 이 물음 앞에서 어떤 양들은 이제 겨우겨우 안락한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양들도 있을 것이고, 조금의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면서, 제발 목자가 한시라도 빨리 잃어버린 양을 찾기를 염원하며 기도라도 하는 양들도 있을 것이고, 목자가 그 양을 찾아 나설 때에, 함께 가겠다고 나설 양들도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잃어 버린 양을 찾아 나서자고 양들을 부추기고, 양들의 옆구리를 쿡 찔러대는 것은 목자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목자가 그렇게 해보자고 했을 때에, 많은 양들이 잃어 버린 양을 찾아 함께 나가보자고 하는 세상이 되면 참 좋겠다. 그런 세상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시대의 아픔에 함께 하지 못한다면, 길 잃은 양과 잃어버린 은전이 누구를 뜻하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결국 길을 잃지 않은 양들이 머물고 있는 그 울타리는 세상의 바다에서 홀로 떠 있는 섬으로밖에 남지 않는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묻는다 :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인가 ? 아니면, 그저 지금의 상태에 만족하고,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내 문제가 아니니, 나는 상관할 바가 없다고 관심도 안 가질 것인가? 그저 잃어 버린 양이 스스로 길을 찾아 오든지, 아니면, 그 양을 찾아 나선 목자와 양들이 무사하고, 무탈하게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두 손 모아 기도만 하고 있을 것인가?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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