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5일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선한 사람에게는 은총을,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는 하느님이야말로 정의로운 하느님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하느님은 권선징악의 하느님이어야 한다고, 그래야 살아 있는 동안 선을 쌓고, 악을 멀리할 수 있지, 그렇지 않다면, 불공정한 하느님이 되어 버린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하느님은 모든 사람들을 당신 곁으로 부르신다. 높은 곳, 낮은 곳 가리지 않고, 비가 내리듯,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하느님은 똑같이 은총을 주신다. 그러나 은총을 내려 주셔도, 그 은총을 알아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고, 아예 은총을 거부해 버리는 이들도 있다.
오늘 복음은 잔치 초대에 대한 말씀이다. 하느님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당신 곁에 사람들이 함께 하기를, 당신과 함께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초대하신다. 초대라는 것이 단순히 신자 되고 안되고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당 나오지 않더라도,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의 양식을 꾸준히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성당 나오면서도,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는 삶의 양식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잔치라고 하면, 천주교 신자들은 대개 미사를 떠올린다. 그런데, 잔치는 떠들썩하고, 신이 나야 하는데, 미사가 별로 재미도 없는 것 같고, 흥도 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미사를 주례하는 사제의 능력에 따라서, 그 사제가 강론을 잘 한다거나, 혹은 노래를 잘 한다거나, 의전이 뛰어나다면, 그나마 미사 « 볼 » 마음이라도 생기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무미건조한 미사에 식상해 하거나, 재미 없다고 한번 두번 미사에 빠지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냉담의 길로 빠져 버리는 사람들이 참 많다.
청첩장 받아 본 사람들,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그 청첩장을 보낸 사람에게 찾아가서, 잔치를 여는 장소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고,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을 하나하나 기쁘고 즐겁게 해달라고 하면, 어떤 마음이 들까? 아마도 십중팔구는 당황해 하고, 황당해 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청첩장에 적혀 있는 잔치 시간과 잔치 장소에는 초대받은 사람이 가야 하는 것이지, 청첩장을 돌린 사람들이 일일이 잔치 장소로 데리고 가고, 일일이 초대받은 사람들 하나하나를 기쁘게 해드릴 수는 없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일상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성당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잔치를 열고, 잔치를 초대하는 주인공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잔치는 사람이 여는 것이고, 성당의 잔치는 하느님이 여는 것이니까, 뭔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사실, 살고 있음 자체가 잔치다. 가난에 지친 청년이 본당의 신부님을 찾아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 신부님, 정말로 힘들어 죽겠습니다. 제가 언제쯤이나 부자가 될 수 있을까요? »라고 묻더란다. 신부님께서는 자기를 점쟁이처럼 보는 청년의 말에 어이없어 하기도 했지만 얼마나 힘들면 이런 질문을 던질까 싶어서, « 자네... 지금도 부자인데? »라고 말씀을 하셨더란다. 청년은 기가 막혀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따지자 신부님은 이렇게 설명했더란다. « 자네 눈은 세상을 볼 수 있고, 수많은 책을 볼 수 있는 재산이지. 두 손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재산이야. 두 다리로는 이 세상의 가고 싶은 곳을 다 갈 수 있으니 재산이라 할 수 있어. 게다가 머리와 영혼도 잘 활용하면 큰 재산이 될 거네 ».
사람들은 몸에 지닌 것이 모두 재산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몸 밖의 것들을 구하느라 전전긍긍하다 청춘과 건강을 잃어버린다. 살고 있음 자체가 잔치임을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잔치에 가자고 하는데, 밭으로 가고, 장사하러 가고, 돈 번다고 바빠 죽겠다고, 나중에 먼 훗날에 은퇴하고 나서 할 일 없을 때, 그때, 잔치의 기쁨을 누려보겠다는 심보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늘 바쁘다, 바쁘다 바빠 죽겠다고 하지만,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바빠야 하는지도 모른 채, 바쁜 삶, 그 삶은 절대로 잘 사는 사람의 삶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잘 산다는 것이 경제적인 부를 마음껏 누리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산다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잘 살기 위해서는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나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함을 가르치고 있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