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5일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열렸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가장 유명한 단어는 aggiornamento와 signum temporis였다. 첫 번째 단어 aggiornamento는 이태리어이긴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에 만들어진 단어다. 1965년 이전의 이태리어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성인 교황 요한 23세께서 조합해 낸 새로운 단어이기 때문이다. 현대화, 혹은 현대 사회의 적응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두번째 단어인 Signum temporis는 라틴어인데, 시대의 징표라는 뜻이다. 이 두 단어는 시대의 징표를 읽어 내고, 시대의 징표에 따라 교회가 변화되고 현대 사회와 발맞추어 나가야 한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근본 정신이요, 세상과 손을 잡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드러내는 단어다.
오늘 복음의 핵심단어는 시대의 징표다. 예수께서는 당신 제자들이 시대의 징표를 정확하게 읽을 것을 기대하신다. 시대의 뜻은 우리들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꿰뚫고 그 속에 묻혀 있는 진상을 보아야만 비로소 알 수 있다. 주식이나, 금값, 원유값, 코스피 지수 등은 요즈음의 시세를 가장 잘 알게 해주는 경제적인 지표라고 한다. 주식값이 떨어지거나, 금값이 오르면, 경기가 안 좋아지고 사회가 불안정하다고 하고, 주식값이 오르거나 금값이 내리면 경기가 좋아지고 사회가 안정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주식이나 금값은 한 시절의 경제적인 수준이나 사회의 심리 상태를 말해주지만, 그 시대의 의미를 말해 주지는 않는다. 시대의 징표, 혹은 그 징표들이 의미하는 뜻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그 시대를 잘 드러내 주는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한다.
그러면, 시대를 잘 드러내 주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한 시대가 어떠한지를 가장 잘 알려면 그 시대에 어렵게 사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살피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빈부 간의 격차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버린다면, 그 시대가 과연 사람 살기 좋은 시대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돈, 돈, 돈, 힘, 힘, 힘 하는 세상이라지만, 돈과 힘이 사람을 살리는데 쓰이지 못하고, 생명을 살리는 데 쓰이지 못하고, 몇몇 사람들의 배를 더 불리고, 몇몇 사람들의 힘을 더욱 강화하는 데에 쓰인다면, 그 돈 때문에, 그 힘 때문에 사람이 죽어 나간다면, 그런 세상 역시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은 아닐 것이다. 우리 시대는 가난하고 소외 받고 버림 받는 사람들이 반려동물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살고 있고, 사람으로 났지만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인권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는 시대다.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어도 좋았던 시절에 비하면, 옛날에 비해서 참 세상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그 세상이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은 결코 아니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아서,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당최 겪어보지 않아서, 철이 없어서 인권을 이야기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이야기하고,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일깨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진리를 찾아야 하는 교회는 보수와 진보의 갈등 속에서 보수 편도, 진보 편도 아닌,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 받은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셔서, 그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편이기 때문에,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 시대는 진정한 인간적인 대우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 힘이 있으면, 아니면 인맥이라도 있으면, 어느 정도 인간 대접받고 살수 있지만 그 셋 중에 어느 한가지도 없으면, 심지어 교회 내에서조차도 사람 대접을 받기가 힘든 세상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이 시대에 진정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일까? 적어도 성당에서만큼은 사람 냄새가 나게끔 하는 것이 아닐까 ?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김해성당은 사람 냄새가 나는 성당일까? 아니 나에게서는 과연 사람 냄새가 나고 있을까? 나 자신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내 형제자매에게 얼마나 살갑게 대하고 있는가? 얼마나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오늘 복음은 나에게 이런 물음들을 던지면서 나를 후벼 파고, 나를 쥐어 흔들고 있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