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4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안도현 시인의 시, « 너에게 묻는다 »는 이렇게 시작한다.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두 줄의 시구절이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불이 생기려면 마찰이 필수 조건이다. 라이터도 부싯돌의 마찰로 불꽃을 내어야 불이 붙고, 성냥도 화약이 묻어 있는 종이와 마찰을 해야 불이 생긴다. 불은 그 자체로 점화되지 않는다. 어떠한 불이든지 간에, 원소와 원소, 재료와 재료 간의 마찰이 있어야 점화된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하느님의 불꽃이 자기 안에서 활활 타오르기를 바란다. 그런데, 하느님이라는 불꽃이 내 안에서 타오르기 위해 감당해야 할 아픔이 있다. 불이 생기기 위해서는 마찰이 필요하듯, 하느님이라는 불이 일기 위해서는 세상과의 마찰자기 육신과의 마찰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과의 충돌 없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세상도 따라야겠고 하느님도 모른척 하긴 어렵고즐길 건 즐겨야 하니 적당히 하느님과 타협하며 사는 그런 식의 거짓 평화에서는 하느님이라는 불꽃이 일기 어렵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내 좋고 내 편한 것은 다 누리고 싶고 그러고 난 다음 신앙생활하고, 사랑하고, 봉사하려고 한다면, 그런 마음 심보는 결국 맨날 천날 « 다음에, 다음기회에 »라는 궁색한 말만 만들어 낼 뿐이다. 

      
내 안에서의 대단히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마찰곧 선택과 결단이 없다면 하느님 불꽃은 타오르지 못한다. 대충대충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다 보면 신앙 생활하면서도, 하느님은 여전히 낯선 분, 멀리 계시는 분으로 밖에 남지 않는다. 10년을 20년을 영성체를 하면서도 신앙심이 약하다는 둥하느님에 대해 자신할 수 없다는 둥 소리를 늘어놓는 자신과 만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불이 일어날 수 있도록 세상과의 마찰, 자신과의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하느님께서 불을 일으키고 싶으셔도 안 된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여 그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하신 그 예수, 권력층에 저항하고, 억압에 항거하며, 거짓 평화, 불의를 고발했던 그 예수의 삶을 오늘의 현실에서 드러내고 살아낸다면, 우리의 삶은 돈과 권력이 최고의 가치로 군림하는 현실에 대해서, 그리고 현실의 무비판적 수용과 자발적 복종이 마치 미덕인양 여겨지는 현실에 대해서 가장 강력한 거부이자 도전이 될 것이다. 악이 평범함으로 일상화되어 버린 현실 속에서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현존하게 되면, 우리의 삶이 바로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신 예수와 똑같이 불을 지르는 자의 삶이 되고, 분열을 일으키는 예수와 똑같이 세상에 분열을 일으키는 자의 삶이 될 것이다. 오늘 복음의 «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습니다 »는 주님의 말씀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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