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6일 수요일 신봉규 의배 마르코 장례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10월 10 목요일, 마르코 할아버지댁에 환자 영성체를 해드리러 찾아갔을 때, 할아버지는 안방에 계셨다. 평소 같았으면 거실에 나와 앉아계셨어야 했는데, 그날은 안방에서 웅크리고 누워 계셨다. « 마르코 할아버지 ! » 라고 조금 큰 소리로 불렀더니, 눈을 뜨시고는 창가쪽 벽에 기대어 앉으셨다. 청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할아버지께 환자 영성체를 해 드릴 때면, 언제나 제법 큰 소리를 내면서, 예식을 거행해야 했다. 그래도 각종 기도문은 아흔이 훌쩍 넘은 연세에도 글자 한자 틀리지 않고 기억하셔서, 환자영성체 때마다 또박또박 응답해주셨다. 

         
지난 2021년 8월 18일, 코로나가 한창이었을 때, 나는 김해성당 주임신부로 발령을 받아 여기 김해성당으로 왔다. 미사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이다. 그래도 같은 해 11월부터 환자 영성체를 시작했다. ‘당신은 버려지지 않았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기도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셈이었다. 그 당시, 요양병원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병원에서는 환자면회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가정집에 계시는 분들부터 환자 영성체를 시작했다. 

         
나는 그때부터 이번 10월 환자 영성체 때까지, 약 3년간 매월 1번씩 신봉규 의배 마르코 할아버지를 만나 뵈었다.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던 아파트는 우리 성당 2구역에 속해 있는데, 할아버지댁을 방문할 때면, 늘 데레사 구역장님이 동행해 주셨다. 처음으로 할아버지댁을 방문했을 때에는 안방에서, 창쪽에 바짝 붙어진 이부자리 위에 할아버지는 앉고, 나는 방바닥에 앉아 환자 영성체 예식을 거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에 자그마한 테이블이 놓여졌고, 의자 2개가 마주 볼 수 있게 놓여졌었다. 2년 전 2022년 어버이날 즈음 환자 영성체를 할 무렵, 방문하는 집집마다 카네이션 꽃이 심어진 자그마한 화분을 드렸는데, 마르코 할아버지께도 드렸다. 할아버지는 그 화분을 테이블 위에 있는 자그마한 선반에 놓고 정성껏 키우셨던 것 같았다. 1년 넘게 그 화분에 심어져 있던 카네이션이 살아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할아버지의 삶의 아주 자그마한 부분밖에 알지 못한다. 이부자리 위,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늘 묵주가 있어서 하루에도 묵주기도 수십 단을 바치셨다는 것, 환자 영성체가 있는 날이면, 언제나 머리를 감거나, 목욕을 하셨다는 것, 그리고 연세가 아흔이 넘으셨어도 환자 영성체 때에 나와 동행했던 루시아 수녀님, 구역분과장님성모회장님, 구역장님 그리고 지금의 크리스티나 수녀님께 꼬박꼬박 말을 높여주셨다는 것 정도다. 그러나 이 자그마한 부분들 속에서도 할아버지는 예의를 갖추고, 신실한 모습들을 한결같이 보여주셨다. 

        
할아버지를 알게 되고, 의배 마르코 라는 세례명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세례명은 103위 한국 성인들 중의 한분이신 정의배 마르코 성인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었다. 정의배 마르코 성인은 46살에 세례를 받아 72살에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신 분이다. 1795년, 천주교를 배척하는 양반집안에서 태어나셨고, 젊은 시절에는 천주교에 입교했던 자신의 형을 책망하고, 천주교 서적을 불태우기도 했지만, 1839년 프랑스 빠리 외방 전교회의 3분 성직자들, Laurent Anvers 주교, Pierre Mauvent 신부, Jacques Chastin 신부의 순교 장면을 목격하고는 이내 천주교 신자가 되었던 분이 정의배 마르코 성인이었다. 천주교 신자가 된 이후로 정의배 마르코 성인은 Jean Berneux 주교가 « 저, 노인을 보시오. 저분의 말들은 완전하고 저분의 길은 바릅니다. 나는 천국에서 저분의 자리만큼 훌륭한 자리를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말로 존경을 넘어서는 경외를 표현할 만큼, 신앙에 신실하고, 이웃 사랑에 열심하였다. 

        
천주교에서는 신앙인으로서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자신의 수호성인을 닮아 간다는 말을 곧잘 한다. 신봉규 의배 마르코 형제님은 당신의 수호성인인 의배 마르코 성인을 닮으려 늘 노력하셨던 것 같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그리고 신봉규 의배 마르코 할아버지의 유가족 여러분, 

     
할아버지와 지상에서의 마지막 작별을 이루려고 하는 지금, 우리가 할아버지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할아버지께서 살아 계셨을 적에 혹시라도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자비로이 용서하고, 할아버지를 영원한 생명인 하느님의 품으로 돌려 보내드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의배 마르코 할아버지를 따뜻이 받아주시기를 간절히 청하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분명히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다. 
 

주님, 신봉규 의배 마르코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죽은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평안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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