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1일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이런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 « 투쟁은 쉽고, 건설은 어렵다 », « 저항은 쉬우나 참여와 창조는 힘이 든다 ». 실제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일구어낸 귀하디 귀한 말이다. 투쟁의 대상이 확실할 때, 적 개념이 확실할 때, 투쟁의 과정은 힘들지만, 적을 물리치는 승리의 순간을 짐작하노라면, 그 힘듦을 견뎌낼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이 있기에 투쟁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건설은 철저한 계획과 구체적인 지향점(vision), 끊임없는 시행착오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뚝심, 그리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기에 어렵다. 저항 역시 마찬가지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 그러나 수천만의 지렁이가 한데 모이고, 하나의 뜻을 세우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의 축적과 분출이 반드시 필요하기에 힘이 든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더러운 영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더러운 영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를 못하고, 다시금 그 사람에게로 돌아 온다고, 그런데 그 사람에게 돌아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에게로 간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복음을 개인의 삶에만 국한시키면 사적인 영성을 최고가치로 여기는 사람들과 종교의 가르침을 지극히 개인사적인, 마음의 평안을 구하는 것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편리한 말씀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인간 사회의 비루한 역사의 한 단면을 고발하는 말씀으로 읽어내야 한다.
« 독재 타도, 호헌철폐 »를 외치던 시절, 투쟁의 대상은 분명했고, 적에 대한 개념은 확실했다.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데에 전력했다.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과정은 비록 힘들었지만, 더러운 영을 쫓아내면, 봄이 온다는 희망으로 그 어려운 시절을 참아내고 견뎌냈다. 그러나 정치 독재라는 더러운 영 하나를 쫓아내니, 경제 독재라는 더러운 영들이 설쳐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4년 현재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더러운 영들이 이 나라를 더럽히고 있다. 숨어 살던 매국노들이 독사 대가리 쳐들듯 나대며 설치고 있는 모습들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부끄러움이 하나 없이 버젓이 불법과 편법을 저지르는 모습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2024년 10월 현재, 더러운 영 하나를 쫓아내니까, 더 더럽고, 더 악한 영 일곱이 쳐들어오는 사태의 한 가운데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너무나도 많다. 철철 흘러 넘친다. 짓눌리고 짓밟혀 살아온 세월들이 너무나도 길고, 그 덕에 짓눌리고 짓밟혀 온 삶에 익숙해져 버려서, 힘들다는 느낌조차도 못 느끼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지난 9월 23일, 오후 3시, 명동성당에서 거행되었던 한국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 50주년 기념미사에서 선포되었던 성명서의 마지막 구절을 여러분에게 읽어 드리며, 오늘 강론을 끝맺고자 한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사이의 불신과 미움을 포용과 이해로 바꿉시다.
너와 나의 뜨거운 사랑을 상생의 에너지로 바꾸기만 하면
얼마든지 쳐낼 것을 쳐내고, 버릴 것은 말끔히 태워서
거룩한 선열들이 꿈꾸던 미래를 향해 전진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