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5일 토요일 성모신심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 절망 »이라는 단어는 끊을 절絶과 바랄 망望으로 이뤄져 있다. 바라는 것을 스스로 끊어내거나, 바라는 것이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의해 끊어져,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바랄 수 없는 지경에 처해질 때에 « 절망 »이라는 단어가 쓰인다. 바라는 것을 스스로 끊어내거나, 바라는 것이 끊어지거나 절망의 종착점은 대개 자살이다.
지난 1997년 IMF이후 이 나라 이 땅에서는 자살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2003년 이후, 지금까지 줄곧 OECD국가들 중에 자살률 1위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 지상에서 희망이 없다고 여기고, 적어도 죽음 이후에는 이 지상보다는 좀더 나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으로 희망하는 안타깝기 그지 없는 자살자들도 있고, 극도의 스트레스로, 헤어날 길 없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이외에도 수많은 여러 가지 이유들로 자살을 택하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다. 설상가상으로 아동들의 자살도 점점 늘고 있다.
이러한 세상에서 오늘 제1독서의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이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친다면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사람들이 정말로 희망을 가지게 될까?
이 물음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확실하다. 성경은 오늘 제 1독서의 끄트머리에 나오는 두 단어, « 공정과 정의 »가 펼쳐진다면, 적어도 절망 속에 살아가는 이들 한가운데에서 실날 같은 희망이 솟아오르리라고 단언한다. 세상에는 공정과 정의에 대한 여러 가지 의미들이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공정과 정의는 이런 것이다. 곧, 공정公定은 공명정대公明正大, 하는 일이나 태도가 사사로움이나 그릇됨이 없이 아주 정당하고 떳떳함을 뜻한다. 공정은 지상에 구현되어야 하는 하느님의 명령이다. 정의正義는 하늘의 명령인 공정을 바르고 의롭게 펼치는 사람의 도리다.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당신의 모습을 따라 창조하셨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지극히 존엄하신 분을 따라 인간이 창조되었기에, 모든 인간은 생명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존엄한 존재다. 공정은 모든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여기라는 하느님의 명령이요, 정의는 모든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여기기 위한 도리를 일컫는다. 정의의 반대말인 불의는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거나, 깨뜨리거나, 짓밟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과 구조를 가리키는 단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12살의 예수께서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와 당신의 양부였던 요셉과 떨어져 사흘 동안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면서 체험했던 것은 성전은 « 아버지의 집 »이요, 하느님은 당신의 아버지이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인간의 아버지라는 진리였다.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둔 모든 자녀는 존엄하다는 것, 모두 귀하다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그리고 당신을 주님이라고,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고,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하셨다. 우리 시대에 세상의 빛이 되는 길, 절망의 늪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 주는 길은 쓰러진 정의의 깃발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요,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거나, 깨뜨리거나, 짓밟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과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어머니 마리아의 전구로 이 일은 마침내 이루어질 것이다. 이 일을 하기 위해 우리가 지금 여기 함께 모여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오늘 독서와 복음은 나에게 다시 한번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독서와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