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9일 연중 제26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남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 죄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죄에 대한 개념과 그리스도교의 죄의 개념에는 차이가 있다. 길에서 누군가가 동냥을 하고 있거나, 구명운동을 하고 있거나, 옳지 않은 것에 대한 탄원서명 운동 같은 것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의 눈길을 피해 모른 채 지나가 버리는 것, 그렇게 한다고 경찰 출동하지 않는다. 법의 심판을 받지도 않는다. 감옥에 가지도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죄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면서부터는 동냥하고 있는 이의 눈길을 외면한 것이, 구명운동을 하는 이들, 탄원서명 운동 하는 이들의 도와 달라는 그 손길을 마다하는 것이 죄가 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서도, 그저 좋은 말씀으로만 여기고 고개만 끄덕이고 마는 것은 죄다. 주위 어느 곳을 보더라도 위로해 주어야 할 슬픔이 있고, 채워 주어야 할 궁핍이 있고, 해방시켜 주어야 할 고통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고통 속에, 외로움 속에 피폐함 속에 신음하는 이들을 격려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견뎌내며, 함께 이겨내야 하는 그런 한계 상황을 보면서도, 들으면서도, 아무런 감정도 가지지 아니하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아니한다면, 그것은 죄다.

사랑할 수 있었음에도 사랑하지 않은 것이 죄다. 나눌 수 있었음에도 나누지 않은 것이 죄다. 용서할 수 있었음에도 용서하지 않은 것이 죄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눈물 흘릴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은 것이 죄다. 부자들 옆에서 너무 그러지 말라고, 너무 자기 것만 독식하려고 하지 말라고, 남의 것까지도 자기 것으로 가지려고 탐욕 부리지 말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 이들에게 개를 풀어 그 상처를 더 악화시키고, 그 상처에 난 고름을 핥아 먹게 하는 이들, 불순세력, 용공세력이라고, 나라 말아 먹을 것들이라고, 경제 부흥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이들, 그들 속에 혹시라도 내가 끼어 있지는 않은가? 만일 그렇다면, 나도 죄인이다. 그들 속에 끼어 있지는 않더라도, 그런 그들의 말에 고개 끄덕이고 있다면, 나도 죄인인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나라 이 땅이 참으로 어두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요즈음은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라고 난리다. 이런 상황에서 침묵은 더 이상 금이 아니다.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서, 중립을 지킨답시고 말하지 않는 것은 그 부조리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 부조리에 힘을 실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다. 교회가 현실에 침묵하면서, 아픔 속에 신음하는 신자들을 독려한답시고, 마음의 평안을 이야기하고, 좋은 말씀 한 말씀만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바로 교회의 직무유기이며, 교회가 죄를 짓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예수께서는 «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 »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와 너, 우리, 그리고 교회가 죄를 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살아가다 보면, 거기에는 분명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들이 신자이건, 비신자이건 상관이 없다. 세상이 좀더 살기 좋은 세상, 아름다운 세상, 행복한 세상이 되기를 갈망하는 선의를 가진 이들이 모인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세상은 하느님의 나라를 닮아가게 될 것이다. 

정녕 예수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그분이 들었던 것처럼 « 미쳤다 »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 바보 »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온갖 조롱과 손가락질도 당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 미쳤다 »고 하는 이들, 우리에게 « 바보, 븅신 »이라고 하는 이들, 우리에게 온갖 조롱과 손가락질을 해대는 이들, 그들은 알지 못한다. 예수의 길을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인지,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그리고 바로 그 길이 부활로 가는 길임을 그들은 결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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