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4일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없을 때,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는 이 없을 때, 인간은 외로움을 느낀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 없을 때, 나의 이야기를 곡해하고, 진실이 진실로 통하지 않을 때, 겉으로만 드러나는 내 삶의 모습을 나의 모든 것인 양, 판단해 버리거나, 나를 오해할 때에도 인간은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단절, 관계의 부재 속에서 느껴지는 실존의 느낌이다. 외로움은 한 인간을 참으로 비참하게 만드는 병이기도 하다. 이 외로움이라는 병은 때때로 지독하게 아프기도 하다. 외롭다는 것, 정말 견디기 힘들다. 하지만, 서로를 이해해 주는 인생의 동지가 한두 사람만 있더라도,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한 곳이 된다. 그 « 동지 »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동지가 바로 가족이다: 부모와 자녀, 형제와 자매.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어떤 일 때문에, 어떤 사상이나, 이념 때문에, 어떤 종교적인 신념 때문에, 부모와 자녀가 서로 반대의 길을 걷기도 하고, 형제와 자매 간에도 서로 반대의 길을 걷기도 한다. 예수께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합니까? 아니오. 내가 당신들에게 말합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습니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루가 12, 51-53).

           예수의 길을 제대로 걷다 보면, 외로워질 때가 있다.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을 때도 있고, 때로는 손가락질과 갖은 욕설들을 들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을 제대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보려고 하면, 처음에는 혼자인 것 같겠으나,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 길에는 언제나 도반이 있다. 

           오늘 복음은 우리들에게 외로움 속을 걷지 아니 하는 길, 든든한 동지들과 함께 연대하는 길을 제시하시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 외로움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본성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준다.  «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오 ».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어제는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 설립 50주년이었다. 어제 명동성당에서 50주년 기념미가가 봉헌되었다. 어제 미사는 사제를 위한 기도를 바치면서 시작되었다. « 우리는 사제입니다 »라는 기도문을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 싶다. 이 글에서 사제라는 단어 대신 나를 넣어보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듯하다. 

우리는 사제입니다.

사제는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아버지 이름을 빛내고

아버지 뜻을 펼치려 그날 하루를 오롯이 봉헌합니다.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묵은 세상의 끝이 아니라

 세상의 처음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따라 세상이 받아먹을 몸, 받아 마실 피가 되고자

십자가의 고난을 수락합니다.

 

사제는 성령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낮추고 비우고 기도하면서

나눔, 섬김, 정결의 삼덕으로 세상과 다른 삶,  나은 삶을 살고자 합니다.

 

사제는 어디서나 환희의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아드님을 잉태한 성모님처럼

거룩한 영과 빛과 힘을 받았으므로 외로워도 힘차게, 괴로워도 기쁘게 세상을 책임집니다.

 

사제는 어느 때나 고통의 사람입니다. 

타인의 고난을 자기 문제보다 긴급하고 중대하게 여기며, 그래서 세상의 고달픈 짐을 

가벼운 멍에에 한 가득 싣고 거뜬히 묵묵히 오르고 또 오릅니다.

 

사제는 자기가 없는 영광의 사람입니다. 지상 최고의 백척간두, 십자가에 올라가

하느님 나라의 문을 활짝 열어 낮은 이 높이고 작아진 이는 크게 모시되

자기는 영영 잊어버리는 영광의 사람입니다.

 

사제는 빛의 사람입니다. 자기가 무엇하는 누구인지 잊은 적 없는, 

자기를 태워서 세상을 비추는 일이 전부인, 암흑 속 횃불을 존재의 이유로 여기는

빛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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