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3일 금요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신부로 살면서 “회개하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어왔고, 참 많이도 해왔다. 회개라는 것이 철저한 자기 반성이라는 것, 뼈를 깎아 낼 만큼 아프게 해야 한다는 것, 입으로는 숱하게 떠들어 왔고, 머리로는 숱하게 생각해 왔다. 그러나 회개는 남이 하는 것, 남이 가진 것을 빼앗은 이들이나 하는 것, 백성을 기만하고, 백성을 눈물 흘리게 하고, 백성을 할퀴고, 분열시키는 이들이나 하는 것으로나 여겼지, 정작 내 스스로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자각은 별로 없었다. 예수의, 40일 간의 광야에서의 시간들이 철저한 자기 반성의 시간들, 유혹과 마주하던 시간들, 회개의 시간들, 어쩌면 하느님의 아들조차도 필요했던 시간들이었음을 머리로나 어렴풋이 헤아렸을 뿐, 그 시간들이 예수를 따르는 이들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들임을 온몸으로 깨닫지를 못했다.
겸손이라는 것이 단순히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겸손이다. 내 눈 안에 들보가 들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겸손의 길을 걸어가는 첫걸음이다.
오늘 복음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주님의 회초리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는 말씀은 맨 먼저 내 눈 속에 들보가 있음을 인정하라는 말씀이다. 세상의 부조리, 세상의 더러움과 역겨움을 보는 눈이 있다면, 내 안의 부조리, 내 안의 더러움과 역겨움을 보는 눈도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은 “남들 하는 것만큼 따라 가면, 50점은 확보된 것 아닌가?”, “나 하나쯤 빠진다고 별 일이 있겠나?”, “이만큼 하면, 남들에게 욕은 안 얻어 먹을 만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식의 안일한 삶 속으로 서서히 빠져 드는 나를 쥐어 흔든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이 그저 2 천년 전, 당신의 눈 앞에 보이는 제자들에게만 한 말씀이 아니라, 2 천년 내내, 세상과 함께 해 오셨던 하느님, 그래서 그 이름도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께서 지금의 나에게 하시는 준엄한 꾸짖음으로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