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감사 미사 강론 – 아름다운 일몰
주임신부 2024. 12. 31, 덕계성당
* <겨울나무, 나의 자세> -유안진-
먼 과거는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세월의 마술은 못 견딜 아픔과 수치마저도 아쉬움과 감미로움으로 둔갑시키며 아늑한 추억의 베일로 가리워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까운 과거는 언제나 부끄럽고 후회스럽기 마련이다. 더욱이 엇그제 같은 지나온 일년 간의 삶의 발자취에는 할 수만 있다면 그 당장 지워 버리고 싶은 회한이 생생히 쳐다보고 있어 오히려 까맣게 잊혀지기를 소원하게도 된다.
지나온 한 해, 어찌 생각하면 무척 짧은 세월이었지만, 때로는 또 얼마나 지겹도록 지리하고 힘겹던 세월이었나? 돌이켜보면 잘못 판단하고 잘못 결정하고 그래서 수많은 회한의 껍질이 수북히 쌓여 있고 더욱 더 안타까운 것은 그것 모두가 다시는 오지 않을 생애의 한 토막이며, 거기에 쏟아 부은 땀과 눈물의 자취이며 허황된 꿈의 껍데기였다는 사실이 아닐까?
그러나 진실로 감사할 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가까운 과거, 아니 살아온 지난 일 년 간의 발자취, 그 부끄럽고 안타까운 흔적이 참으로 우리를 겸허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이 아니랴? 자신의 약점을 볼 줄 알고 인정할 줄 알면서 정직을 배우고 교만을 벗어나서 자기 삶의 태도를 겸손하고 신중하게 다스리고, 나아가서 타인의 잘못도 너그러이 용서하고 함께 아파할 줄 알며, 인생의 깊이와 넓이를 그리고 또 긴 안목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랴?
지나온 일 년 동안 우리 모두는 각자의 목표를 세우고 자기 나름의 방식에서 성실히 땀 흘리며 살아왔다. 열심히 살고 싶어서 가족과 친구와 이웃을 사랑하고, 사랑이 지나쳐 질투하고 미워하기도 했을망정, 서로의 손을 잡고 도움이 되고자 애써 왔다.
그 누가 자신을 망치기 위해서, 친구와 이웃을 해치기 위해서 고군분투할 만큼 극악하고 어리석을 수 있으랴? 결단코 아무도 없다. 그렇다. 그 누구도 잘못 살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자신 있는 이 위로가 있어, 새해를 위한 소망은 언제나 지난해의 잘못을 밑거름삼아 움트게 된다.
지난 한 해를 어떻게 살아왔든 지금은 돌이켜 반성할 때이며, 온갖 꿈의 허상을 떨쳐 버리고 다음 한해를 위하여 스스로 자청하여 겨울 매를 맞고 선 나무의 준엄한 자세를 배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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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일몰.... / 일몰 = ‘예쁘다.’가 아닌, ‘아름답다.’......
올 한 해 동안, 감사..... +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불어, 오늘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 전례를 봉헌하면서, 우리 모두 성모님을 더 닮아갔으면 합니다. 특히, 오늘 복음 속에 나온 말씀처럼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신 성모님’(루카 2,20)의 그 자세를 우리도 본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성모님의 전구하심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지금, 일몰처럼 아름답게, 이 순간을, 올 한 해를 잘 마무리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