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음의 성모님을 만나다
오지영 젬마 / 반여성당 · 시인
아들 부부는 결혼한 지 6년 만에 쌍둥이를 안았다.
결혼 이후, 아들 부부는 아기를 낳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주님의 뜻이 아니었는지 계속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느끼게 되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고 기도하는 수밖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하는 기도가 전부였던 우리에게 언젠가 조각 작품으로 본 ‘들음의 성모님’이 생각났다. 나는 남편에게 9일 기도를 함께 하자고 제의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새벽 5시 55분에 일어나 묵주의 9일 기도에 들어갔다. 새벽에 일어나 함께 기도드린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묵주를 든 손에 절실함을 담았다. 묵주 한 알 한 알에 정성을 다했다. 청원기도와 감사기도가 끝날 때쯤 설 명절이 다가왔다.
서울에 있던 아들내외가 내려왔고 우리는 주일미사를 드리고 점심을 먹게 되었다. 식사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있는데 며느리가 봉투를 두개 내밀었다. 나에게는 얇은 봉투였고, 남편에게는 약간 도톰한 봉투였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떨렸다. 남편이 봉투를 열어보니 임신테스트기가 들어 있었다. 두 줄이 선명한 그것은 임신임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울컥하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성모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함께 해주시는 들음의 성모님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절실하게 기도하면 들어주시는 성모님의 은총이었다.
함께 기도하는 것이 처음이라 어색하기도 했지만 남편과의 기도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좋은 습관이 될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이대로 끝난다면 뭔가 허전할 것 같았다. 정성껏 기도드리는 마음이 계속 되어 9일 기도를 꾸준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의논하니 흔쾌히 남편도 동의한다. 매일 5시 55분에 일어나 드리는 9일 기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향은 그때그때 다르다.
기도를 드리는 중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며느리는 임신 중에 통신교리를 받았다. 그런데 쌍둥이가 되다보니 힘이 들어 병원에 자주 입원하는 일이 생겼다. 통신교리는 문제지를 우편으로 받고 답을 적어 우편으로 보내는 방식인데 병원에 있다 보니 계속적으로 공부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은 이란성 아들 쌍둥이를 낳고 계속 공부를 한 결과 드디어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대천사라는 세례명을 아들 쌍둥이에게도 선사했다.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신앙 속에서 산다는 것은 풍요로운 삶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읽은 글을 인용하며 같은 마음임을 고백한다. 그런 성모님이 있어 다행이다.
‘성모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걸 느낀다. 묵주 알 하나하나에 어머니의 지혜와 용기가 배어있어 고난과 고통을 이겨낼 인내가 전해진다. 묵주는 신비의 방을 여는 열쇠다. 어머니의 귀로 듣지 못하는 기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