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교회의 전례로 보면, 오늘은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이며 다음 주부터는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합니다. 새로운 한 해는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대림시기로 시작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오시기를 기다리며 준비하기 전에, 오늘 우리는 주님이 누구이신지 어떤 분이신지 먼저 묵상하며 지냅니다.
구약성경의 사무엘기를 보면, 이스라엘의 판관이자 예언자인 사무엘에게 사람들이 찾아와 이스라엘의 임금을 세워달라고 청합니다. 사무엘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임금을 세우게 되면 임금이 백성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전쟁도 일으키고 강제 노역을 시킬 것이며 딸들을 데려다 하녀로 삼을 것이라 경고합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임금을 원합니다. 임금이 있어야 주변 민족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으며, 번영과 부귀를 누릴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사무엘은 사울이라는 젊은이를 뽑아 도유하여 임금으로 축성합니다. 그러나 임금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의 법을 지키고 하느님이 주신 권한만을 행사해야 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의 왕 가운데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은 다윗과 솔로몬 정도에 불과합니다. 다윗은 계약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왔고,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어 그 계약의 궤를 성전에 모십니다. 그 이후의 왕들은 다산과 풍요를 기대하여 우상숭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고, 다툼과 분열 가운데 있었습니다. 결국은 이스라엘 전체가 바빌론 제국에 함락되어 다윗의 왕조는 끝나버립니다. 실패와 좌절 가운데 에서야 비로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이 새로운 왕을 보내 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새로운 왕은 부귀와 번영,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왕이 아니라, 하느님의 참 생명을 나누어 주시는 분이리라 여겨졌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언자 이사야는 하느님이 보내 주시는 왕은 임금의 모습이 아니라 스스로 백성의 죄를 뒤집어쓰고 고난 받고 죽어가는 종의 모습으로 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부귀와 번영을 가져다줄 왕의 모습과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의 왕은 구약성경 안에서 뿐 아니라, 신약성경 안에서도 서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빵의 기적 이후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자 했습니다. 백성들은 빵이 보여주는 풍요와 번영을 추구한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도 제자들은 예수님께 영광의 때에 자신들이 예수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마실 잔을 마실 수 있느냐?”하고 되물으시며 거절하십니다. 신약성경에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부귀와 영광의 하느님 나라를 세울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어쩌면 그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런 왕이 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받으실 때, 빵과 권력과 명예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쳤습니다. 예수님은 빵과 권력과 명예를 이용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대로 모든 이들이 빵과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족쇄에서 자유롭게 해방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분께서는 가장 약하고 무력한 모습으로, 가장 낮은 이들의 자리에, 가장 아픈 이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풍요가 아니라 하느님의 참다운 생명을 보여주셨고, 빵과 권력과 명예로 얻을 수 없는 참다운 행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삶이 참다운 자유를 얻고, 또 다른 행복을 맞보며, 하느님 앞에서 참다운 생명을 얻습니다. 주님이시야말로 온 누리의 임금이시요 참 생명을 주는 참다운 왕이십니다.
오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며, 주님만이 우리에게 생명과 자유를 주는 참다운 왕이심을 기억하며, 이 미사를 정성껏 봉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