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왕 대축일 – 죽음 너머의 삶
주임신부 2024. 11. 24, 덕계성당
우리는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또한 나 자신의 죽음을 묵상하는 위령 성월을 보내는 중이며, 오늘은 전례적 달력으로 마지막 한 주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마흔 무렵 세상을 떠난 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임종 후에 그 부인의 베개 밑에서 미리 준비된 편지가 한 통 발견되었는데, 홀로 남게 될 남편에게 남긴 글이었습니다. - “사랑하는 당신, 먼저 떠나서 당신께 정말 미안해요. 그렇지만 주님께서 부르시는데 어쩌겠어요? 내가 먼저 떠난다고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주님 나라에 먼저 가서 좋은 곳에 자리 잡고 기다릴게요. 당신께 정말 고맙고 또 미안해요.”
“주님께서 부르시는데 어쩌겠어요? 주님 나라에 먼저 가서 기다릴게요.”라는 표현이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승을 떠나는 것은 정녕 아쉽고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주님께서 부르시는데 어쩌겠냐?’는 생각, 이 세상 너머 또 다른 세상을 확신하는 그 부인의 유언에서 참 신앙인의 모습을 읽을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방파제나 갯바위 끝에 설 때마다 드는 느낌이 있습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세상 끝에 서서, 한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떠오르는 생각입니다. ‘지금 비록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저 바다 건너에 또 다른 땅이 자리 잡고 있겠지? 마찬가지로, 이 고단한 이승 삶을 건너가면 또 다른, 더 나은 삶이 새롭게 시작되겠지, 결코 여기가 끝이 아니겠지...’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갑자기 가슴이 훈훈해져 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훨씬 부드러워집니다. 가슴이 설렙니다. 다시금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떠오릅니다.
먹구름이 잔뜩 끼고 번개가 내리친다고 하더라도, 세상이 끝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봅니다. 어두운 하늘 그 너머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찬란한 태양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고통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실패만 거듭된다 하더라도, 우리 인생이 끝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세상 저 너머에 이 세상보다 훨씬 아름답고 풍요로운 주님의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에, 우리는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을 지니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맞으며, 복음을 통해 전해지는 예수님의 말씀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입니다. 예수님을 진정한 왕으로 모시며 그분을 따르는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영원한 나라에 머물기를 원하는 자들로서, 자신의 궁극적인 희망과 기대를 이 세상이 아닌 주님 세상에 두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또 기쁨을 잃지 않으며 매일을 성실히 살아가 봅시다. 주님의 세상을 향해 힘차게 조금씩 나아가 봅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례력으로 한 해를 잘 마무리하시는 이 한 주간 되셨으면 합니다. 우리 덕계성당 공동체 구성원이신 여러분 모두의 삶이, 죽음을 뛰어넘는 ‘궁극적인 희망과 기대’가 가득한 가운데 매일이 은혜롭길 기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