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일(나해) 강론 – 자른다는 것
주임신부 2024. 9. 29, 덕계성당
유난히도 더웠던 이번 여름이었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더위가 물러가고 높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니 가슴 속까지 청량합니다. 더운 날씨를 핑계로, 포기했던 여러 가지 것들을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는 좋은 계절입니다. 황금빛으로 물드는 들판과 알차게 영글어 가는 과일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신앙생활도 느슨했던 마음을 다시 잡아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은 한 해 농사와 참 많이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좋은 열매 맺는 신앙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며, 농부가 한 해 동안 어떤 노력을 기울여 좋은 열매를 맺는지 살펴보는 일은 유익하겠습니다.
씨 뿌릴 때의 농부는 한없이 인자하고 따뜻합니다. 뿌려진 모든 씨앗에게 물을 주며 무럭무럭 자라기를 기원하지요. 작물을 튼튼하게, 크게 키우는 일은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한 필수적인 작업입니다. 양적인 성장이지요. 하지만 그것들만 가지고는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없겠습니다. 성공으로 가는 마지막 열쇠가 필요한데, 그 열쇠는 바로 ‘잘라 버리는 일’입니다.
작물들이 어느 정도 크면 주인은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아깝다고 수확 때까지 다 같이 키웠다가는 볼품없는 열매들만을 수확하게 되겠지요. 스스로 키운 자식 같은 농작물임에도, 가장 좋은 열매 몇 개만을 남겨두고 아낌없이 솎아내야만 합니다. 양분을 다른 곳에 빼앗기지 않고 가장 좋은 열매들에게 집중할 때, 비로소 농부는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잘라 버려야 할 때’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마르 9,43.47)
자, 그럼 우리는 무엇을 잘라야 할까요? 정말 손을 자를까요? 정말 자르자니 무섭고, 예수님 말씀이니 듣고 그냥 무시할 수도 없어 갈팡질팡하게 되는 듯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주님께서 우리 지체를 잘라내라 명하셨다고 여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잘라내라고 하신 것은 지체가 아니라 욕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지혜로운 방법은 무엇일까요? 죄를 부추기는 원인과 죄지을 기회들을 잘라내는 일입니다. 스스로를 죄짓는 환경에 방치하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하는 ‘주님의 기도’를 바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는 부분을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나의 약점은 무엇이며, 욕망을 끊어버리기 위해 나는 어떤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가?’라고 스스로 질문해 보는 지혜가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순교자의 후손이신 여러분, 순교자 성월인 이 9월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순교자의 모범을 따라 욕망으로 가는 양분을 자르고 죄지을 기회를 자름으로써, 영원한 생명과 기쁨의 열매를 수확하는 승리자가 되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