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의 의미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어떤 면에서 순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00년 전 이스라엘의 변방에서 로마 제국으로 전파된 그리스도교는 엄청난 박해로 많은 이들이 순교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를 비롯한 초대 교회의 거의 모든 교황들이 순교자였습니다. 그들은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각 민족들에게 전해질 때마다 박해와 순교는 뒤따랐습니다. 마찬가지로 200년 전 조선으로 전파된 그리스도교 역시 네 차례에 걸친 엄청난 박해가 있어서,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한 한국의 순교 성인들을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순교란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순교한다는 말에는 박해와 핍박이 있었음을 전제합니다. 때로는 세상의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기존 질서와 이념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했기 때문에 박해가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삶의 방식은 언제나 세상의 삶의 방식과는 다른 것이었고, 그리스도인의 삶과 존재 자체는 언제나 세속의 지배자들에게는 위협이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신앙인은 로마제국의 황제숭배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200년 전 조선의 그리스도인들은 유교적 사회질서와 그 이념을 자신의 삶 안에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세상에 의문을 제기하고, 세상의 질서와 문화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언제나 신앙의 도전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 신앙에 가장 큰 도전은 물질주의와 소비주의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후로 가장 풍요롭게 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몇 번째 손가락에 꼽힐 만큼 풍요롭게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진정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돈이라면 모든 것을 사고 팔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돈으로 평가됩니다. 인간도 재산과 지위로 평가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결핍되고 고갈되어 갑니다. 마음과 영혼의 결핍과 고갈을 채우기 위해서 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닷물을 계속 마신다고 갈증이 해소될 수 없듯이, 물질과 소비로 우리 영혼의 고독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물질적으로는 갈수록 풍요로워지지만, 우리의 영혼은 갈수록 고갈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러한 물질주의와 소비주의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인간은 물질로 온전히 채워질 수 없다고, 인간의 참다운 행복은 물질을 소유하는데 있지 않다고 복음은 가르칩니다. 우리의 신앙은, 인간은 재산과 사회적 지위로 평가받거나 판단받는 존재가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인간의 참다운 존엄과 행복은 인간이 하느님을 닮은 존재임을 깨닫는 것에서 온다고 가르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목숨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예전보다 더 많은 도전과 유혹을 합니다. 순교의 본래 의미가 증언하고 증거하는 것이라면, 오늘 우리의 증언과 증거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삶의 방식, 우리의 신앙이 세상의 가치와 어떻게 다르고, 세상의 사람들에게 무엇을 증언하고 증거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오늘 우리 시대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신앙을 증거할 것인지 묵상하며, 이 미사를 정성껏 봉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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