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8일 연중 제23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청각 장애인이나 난청인을 위한 미사에 참례한 적이 있었다. 주례 사제의 입당에서부터 퇴장에 이르기까지 주례 사제와 몇몇 봉사자들만 말과 함께 수화로 소통을 하고, 미사에 참례한 다른 모든 이들은 수화를 통해서 응답을 하는 장면들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 미사를 마치고 간단한 다과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 내내 방 안은 온갖 수화들만 오고 갈뿐, 소리가 별로 없었다. 그들이 언어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통에 장애를 겪고 있는 것 같았고, ‘듣고 싶은 것들이 참으로 많을 텐데, 삶이 참 많이 불편할 텐데’ 이런 생각들이 내 뇌리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다.

하지만, 나의 생각들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수화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그들로부터 참다운 대화법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수화로 이야기할 때, 보통 우리들이 말을 주고 받을 때처럼, 중간 중간에 끊어버리거나 상대가 말을 하고 있는 중간에 끼어드는 경우들이 별로 없었다. 상대방이 수화로 말을 할 때, 눈으로 그 수화를 다 보고 나서야 응답을 했다. 그들은 비록 육체적인 귀가 먹었을지라도,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일 줄 아는 귀를 가지고 있었고, 참다운 소통을 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이방인 지역에서 어떤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쳐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고쳐주신 귀먹은 반벙어리가 누구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태어날 때부터 그러했는지, 아니면 어떤 사고를 당해서 그러했는지 알 수 없다.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를 오늘날 사회복지학의 용어로 바꾸면, 시각 장애인, 청각 장애인, 비언어적 소통자다. 성경은 육체적인 시각 장애인, 청각 장애인, 비언어적 소통자뿐만 아니라, 영적인 시각 장애인, 영적인 청각 장애인, 영적인 비언어적 소통자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일깨워 준다.

곧 아무리 기적이 일어나도, ‘믿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음을 성경은 증언한다. 그들은 « 눈이 있어도 보질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를 못하며,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다. 부끄럽지만, 그런 사람들 가운데에는 나도 끼어 있음을 시인한다.


청력은 정상이지만, 나는 종종 사람들의 소리들을 잘 듣지 못한다. 일부러 안 들으려고 할 때도 있다. 몇몇 소위 잘 나간다는 사람들의 말은 솔깃하게 잘 들으려고 하고, 나와 친한 사람들,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 나와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의 말은 곧잘 듣지만, 나와 생각이나 의견이 다른 사람들, 나와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 나와 적대관계는 아닐지라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에는 내 촉각을 곤두 세우고 날카로운 말을 준비해둔다. 그리고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즉각 뾰족한 송곳과도 같은 말로 응수해버린다.

나는 사람의 말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도 잘 듣지 못하기도 하고, 일부러 안 들으려고 할 때도 있다.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소리는 나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 타인과의 만남, 나 자신과의 만남 한가운데에서 들린다. 내가 매일 겪는 좋은 일, 좋지 않은 일, 행복한 일, 불행한 일, 기쁜 일, 슬픈 일 등등 이 모든 사건들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말씀을 건네고 계신다. 사건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메시지를 나에게 보내고 계신다.

이는 내가 믿는 하느님이 늘 나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시기에 그러하다. 타인에게서 들려오는 소리, 나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통로, 하느님 말씀의 성사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나의 귀가 건강하고, 나의 청력이 정상이라서 갖가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더라도, 정작 내가 듣고 따르며 실천해야 할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하거나, 듣지 않으려 한다면, 나 또한 청각 장애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무리 내가 건강한 입과 혀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입에서 탐욕스러운 말이나, 남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이나, 남의 삶에 독침을 쏘는 듯한 말을 한다면, 나 또한 ‘참된 말’을 할 줄 모르는 비언어적 소통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의 눈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을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못하고, 마치 오늘 제2독서에 나오는 표현처럼,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사람같이 보이고, 누추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은 사람같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저 그가 가지고 있는 돈이나, 권세, 영예만을 본다든지, 또는 나 자신의 꾸밈없는 적나라한 모습을 볼 줄 모른다면, 나 또한 눈 뜬 시각 장애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예수께서는 청각 장애에다 언어 장애까지 겪고 있는 중증 장애인에게 « 에파타 »라고 말씀하시며, 그를 치유해주셨다. 그런데 그분의 치유방식이 독특하다. 그저 말씀 한번으로 치유가 이뤄지고도 남을 능력을 가지신 분이 당신의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신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도 내쉰다. « 사랑한다 »는 말 백만 번보다, 손을 잡아주고, 서로 체온을 느끼고, 아픈 곳을 어루만지는 예수님의 행동들이 바로 사랑이다. 정무적인 행동이나, 정치적 언사가 아닌, 자기를 만나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그에게 따스함, 위로, 격려, 공감을 느끼게 해주는 말과 행동들이 사랑이다. 그래서, « 사랑 »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인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내 체온을 전달하고, 내 마음을 전하는 말과 행동은 대면, 비대면의 경계에 머물지 않는다. 손을 잡지 못하면, 따스한 눈빛을 보내면 되고, 직접 만나지 못하면, 전화든, 문자든, 카톡이든, 보조 소통수단들을 자주자주 이용하면 된다. 몇 년 전만해도 공상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화상통화도 이제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해졌다.

« 에파타 »라는 말 한마디만 달랑 던져놓고 휙 뒤돌아 제 갈 길을 가버린 우리의 주님이 아니다. 그분은 당신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 «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시오 ». 이 어렵고, 힘들고, 괴롭고, 피폐하기까지 하는 요즈음의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분의 사랑 명령은 계속되고 있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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