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9일 목요일 이재숙 모니카 장례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10년 전 즈음, 생선92라는 가게가 있었다. 그 가게의 사장님은 조금 별났다. 정구사 신부님이 자기 가게를 축복해주면 좋겠다고, 이리저리 물색하다가 나를 발견한 셈이었다. 그 가게 축복식을 하고 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모니카 할머니를 뵈었다.
그 당시 나는 옛날에는 울산성당이라고 불렸던 복산성당에 있었다. 할머니와 생선 92사장님이었던 크리스티나 자매님으로부터 울산성당 본당 부회장을 하셨던 아버님, 야고보 형제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생선92 가게 축복식 이후에 모니카 자매님의 아드님이 고기 가게를 열었고, 그 고기 가게 축복식도 내가 해주었다. 그 이후, 생선92 가게를 접고, 해야 식당에서 일하다가, 해야 식당을 인수한 이후로, 모니카 할머니는 크리스티나 자매님이 모셨다. 지윤이 그라시아도, 준하 소화 데레사도 알게 되면서, 참으로 나에게 고마웠던 것은 내가 그들 가족의 일원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울산을 떠나 해양사목 담당 신부로 살면서도 가끔씩 전화로 모니카 할머니의 안부를 여쭙고, 가끔씩 크리스티나 자매님으로부터 자기보다 어머니가 더 건강한 것 같다는 말씀을 들을 때면,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엊그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신의 세례명인 모니카 축일에 선종하셨다는 소식이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빙긋이 미소 두 번 지으셨다는 얘기도 들었다. 100수를 채우셨으니, 참 오래 사셨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편안하게 미소 지으시며 낮잠 주무시듯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다는 말에 당신의 평생을 그렇게 마무리하시는 구나, 빙긋이 미소 지을 만큼 당신의 생이 행복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티나 자매님의 아버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엔 그분을 기억하는 이들이 참 많았겠지만, 어머님이 세상을 떠날 때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려나 하는 생각에, 또 무엇보다도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내가 꼭 장례미사에 참석하겠다는 크리스티나 자매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오늘 아침에 김해에서 여기 남목성당까지 부리나케 달려왔다.
이제 모니카 어머님은 아주 먼길을 떠나신다. ‘저 하늘 위 거기’라고 겨우 이름 부르는 곳, 얼마나 좋은 곳이길래 그 길에 올라선 이들은 다시는 이곳으로 되돌아오지 않으려 하는 그 곳으로 가신다.
함석헌의 시,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를 떠올리게 하는 이 순간이다.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다. 온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다.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다. 그 사람은 유가족들의 아픔과 슬픔에 동참하려 여기 이 자리에 계시는 모든 분들, 자매님의 벗들과 자매님의 자녀들과 손녀들이다.
그러니 모니카 자매님, 이제 맘 편히 주님 곁으로 떠나소서. 이 자리에 모인 모두는 영겁의 시간 속에서 잠시 헤어짐을 잠시 슬퍼하지만, 머지 않은 훗날 다시 저 하늘에서 만날 것을 믿고 희망하고 또 그렇게 알고 있으니, 맘 편히 주님 곁으로 가소서.
삶과 죽음의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 부활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요, 구세주로 믿으며 영원한 생명을 희망해 온 당신의 딸, 이재숙 모니카를 이제 당신 손에 맡기오니, 그의 소소한 잘못들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그가 따스한 당신 품 안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해주소서. 남아 있는 저희는 당신의 너그러우심을 본받아, 혹 있을지 모를 모니카 자매의 허물을 용서하겠나이다.
주님, 이재숙 모니카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죽은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