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7일 화요일 성녀 모니카 기념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대활약했던 신학자들 가운데, 프랑스 출신으로 이브 꽁가르(Yves Congar, 1904-1995) 라는 신부님이 계셨다. 그분은 교회의 사명이 하느님께 대한 복종임을 설파하셨던 분이셨다. 하느님께 대한 순종은 교회의 순종으로, 교회에 대한 순종은 교황에 대한 순명으로, 교황에 대한 순명은 교회장상에 대한 순명으로 이어진다고, 그리고 그 반대는 절대로 안 된다고 주장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반대의 경우들이 교회의 역사 속에서 버젓이 행해져 왔다는 것이다. 교회장상에 대한 불순명이 교황에 대한 불순명이고, 결국 하느님에 대한 불순명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한술 더 떠서, 본당 신부에 대한 불순명이 마치 하느님에 대한 불순명이라는 식으로 살아왔던 시절도 있었다. 이 모두 주객이 전도된 경우들이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바리사이들을 힐책하시는 예수님을 만난다. 속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라고 관심조차 갖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간음하다가 발각된 여인에게는, 단 한 마디 꾸중도 않으시고 « 나도 당신 죄를 묻지 않겠소 » 라고 말씀하시면서 자비로움을 보이신 분인데, 그리고 아버지 말씀도 듣지 않고 제 마음대로 가출해서는, 온갖 나쁜 짓거리를 다 하다가 돌아온 아들을 어여삐 받아 들이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도 말씀하시는 분인데, 심지어는 당신을 못박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다고 그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까지 기도하신 분인데, 왜 유독 바리사이들에게만은 그토록 화를 내시고, 그들을 무자비할 정도로 비판하셨을까 ?
그들은 율법의 전문가들이었다. 그들은 성경을 잘 알고 있었고, 날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연구했던 이들이었다. 전문가들은 무엇이 껍데기고 무엇이 알맹이인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다.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부수적인 것인지를 아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독점해서는, 자기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 많은 율법조항들을 만들었다. 법을 잘 아는 사람이 법망을 잘 빠져 나오듯이, 이들도 그렇게 위선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설상 가상으로 그들은 자기들에게 순명하지 않았던 백성들에게, 하느님께 순명하지 않는다는 불경죄라는 멍에를 씌워 버리기까지 했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가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모습과 내 자신을 비교해본다. 그리고는 부끄럽지만, 많은 공통점을 발견한다. 나의 가식적인 면과, 권위주의적인 면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말로만 뭐라고 뭐라고 하면서 정작 제대로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는 나태한 면과 교만한 면 등등을 볼 때, ‘영락없는 바리사이구나’ 하는 생각을 숨길 수가 없다.
지난 한 주간 백두산 통일기행을 하면서, 나 자신을 반성하고, 정녕 이 나라 이 땅의 지도자들이 회개하기를 촉구하며 기도했다. 이 땅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의 쇄신과 회개가 절박하게 요청되는 요즈음이다. 회개란 자기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발버둥치는 것만이 아니다. 회개란 더욱 인간다워지려고 애쓰는 것이다. 개가 고양이처럼 굴면 별로 좋은 모습이 아니다. 고양이가 개처럼 굴어도 징그러울 따름이다. 인간도 인간다워지려고 할 때,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법이다. 인간이 마치 하느님인 양, 아주 고고한 양, 똥도 안 싸고 실수도 안 하는 존재인양, 가식과 위선으로 자신의 본 모습을 가리려고 하고, 감추려고 할 때, 그리고 자신의 눈꼽만한 자존심때문에 끝까지 시치미를 떼려고 할 때, 거기에 정말 필요한 것은 회개이다.
회개란 바로 인간성 회복이다. 하느님 앞에 우리가 참된 인간이 되게 해 달라고 고백하는 것이 회개다. 그 회개에로 현 정부의 책임자들과 현재 정치, 종교 지도자들을 초대하는 것이 지금 이 나라 이 땅에서의 하느님의 뜻이며, 그 뜻을 실천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