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8일 연중 제20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 우리 삶의 힘의 원동력임을 알지만, 그 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자주 잊고 산다. 쌀 한 톨, 한 톨이 농부들의 피와 땀이 어려 있다는 것은 알지만, 우리는 그 밥 안에 농부들의 ‘얼’과 ‘정신’과 그들의 ‘정성’이 들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언제나 밥을 정성스러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지는 않는다. 최첨단 냉장고에다, 최첨단 밥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식물들이 너무나도 풍족하다 보니, 먹다 남은 음식물이 썩어 뭉그러진 채로 버려지고 있다. 그 음식물 찌꺼기로 말미암아 환경이 오염되고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2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많은 돈이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밥의 소중함을, 밥의 고귀함을 쉽사리 잊는다. 그리고는 배가 부르니까, 살찌니까 더 이상 못 먹겠다 하고는 오늘도 밥공기에 두어 숫가락분의 밥알들을 남겨 버리고, 남은 반찬들을 음식물 찌꺼기통에 곧장 버려 버린다.
이러한 밥 이야기는 성체성사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를 아주 잘 드러내주고 있는 듯하다. 모든 일들이 일상화되어 버리고, 타성화되어 버려서 놀랍고도 중대한 일조차도 그저 한때 지나가는 일들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마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성체 성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옛날에 방영했던 영화들을 재탕, 삼탕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재미없는 것 같다.
입으로는 머리로는 미사를 통해, 미사 안에서 저 생명 없는 빵과 포도주가 생명있는 하느님의 아들의 살과 피로 변화된다는 것을 믿고, 또 그렇게 알아 듣지만, 그 성체를 받아 모시는 이들도 그 성체 덕분에 자신들의 몸이 성체가 되고, 자신들의 피가 성혈이 된다고 믿고, 또 그렇게 알아 듣지만, 그러한 성변화가 얼마나 엄청난 사건인지,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지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다.
성체성사에 참례함으로써, 곧 성체를 받아 먹음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결합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이 진리는 결코 훼손될 수도 없고, 모독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진리가 실체화된 우리, 성체가 된 우리는 이 땅의 현실로 말미암아 훼손 당할 수도 있고, 모독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로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성체가 되어 살아 가듯이, 적어도 천주교 신앙을 고백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나와 똑같이 성체가 되어 살아 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땅의 현실, 성체가 된 사람들이 모욕을 당할 수도 있고, 인간 이하의 대우를 당할 수도 있는 이 땅의 현실 속에서 나만 모욕을 당하지 않으면 되고, 나만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은 결국 성체가 되어 살아가는 자기 자신을 모독하는 일이고, 자기 자신을 인간 이하로 대우한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신앙인들은 미사를 통해, 미사 안에서 성체와 성혈로 변화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 그 영성체를 통해 내가 네가 우리들 모두가 또 하나의 예수로 변화된다는 이 진실을 믿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믿음은 또한 희망과 사랑을 가능케 하는 원천이 된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부활과 종말에 대한 신앙, 죽더라도 우리는 부활할 것이며, 세상 마지막 날에 우리의 주님께서는 모든 악한 것들을 쳐부수고, 이 세상을 이기시는 분으로 재림하실 것이라는 신앙, 이 신앙이 우리를 희망의 사람이 되게 하고,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빵이 되어 우리에게로 오시는 하느님을 영접하면서 내가 천주교 신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희망의 사람이 되고, 사랑의 사람이 되어 살아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나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천주교 신자로서 살아가는 삶을 내팽개치고, 그저 마음의 평안이나 얻으려고, 그저 현세의 복락이나 좀 얻으려고 신자 노릇하며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이런 기도를 바치고자 한다. 나의 기도에 여러분도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
주님, 저희는 오늘도 당신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리고 당신의 몸을 받아 모시기 위해서 여기 이렇게 모여왔나이다. 당신의 몸을 받아 모심으로써, 저희도 당신을 따라 성체가 되기 위해 여기 이렇게 모여왔나이다. 이러한 저희들에게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시며 희망의 사람,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희로 하여금 눈물 나도록 서러운 이 세상, 온갖 악이 창궐하고 있는 세상, 거짓과 불의와 차별과 모욕과 업신여김이 난무하는 세상을 아름다운 세상, 당신의 나라를 닮은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데 앞장서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