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6일 금요일 임애열 아나다시아 장례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아나다시아 할머니를 떠올리라면, 할머니보다는 할머니의 며느리인 실비아 자매님이 먼저 떠오른다. 나는 아나다시아 할머니의 며느리인 실비아 자매님을 좋은 금강병원에서 먼저 만났다. 새벽미사 때에 살짜기 오셔서 미사 드리고는 언제 가셨는지도 모르게 성당을 빠져나가는 실비아 자매님과 좋은 금강병원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뒤로는 성당에서나 시장에서나 만나면 인사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할머니께 병자성사를 드린지 꽤 오래 되었다. 한참동안 소식이 없길래, 다시 건강을 회복하신 줄로 알았다. 그런데 엊그제 연도회장님으로부터 할머니의 선종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루에도 수많은 죽음의 소식을 접한다. 매일 펼쳐 드는 신문에서, TV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의 죽음을 전하는 소식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대부분은 크게 놀라지 않는다. 신문을 덮는 것과 동시에 잊어버리거나,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잠시의 화제거리로 인용할 뿐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죽음에 놀라지도 않고 마음에 담아 두지도 못할까?
그것은 아마도 그 죽음은 나와 크게 상관없는 ‘남의 죽음’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건성으로 듣고 보던 남의 죽음이, 나와 상관없다고 여겼던 그 죽음의 소식이 어느 날 갑자기 내 가까이에 있던 사람이, 나의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으로 바뀔 때에는 자신을 당황하게 만들 뿐 아니라 슬퍼지며 울음을 터뜨리게 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그 죽은 시신을 다시 한번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의 생전의 웃음이나, 눈에 익은 눈빛 그리고 그 사람과 나누었던 대화들, 심지어는 그 사람과 다투었던 모습까지도 그리워 한다. 죽은 이의 차갑고 말없는 얼굴은 진정 마지막이 왔다는 인상도 심어준다. 그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결정적인 끝, 종말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들어 버린다. 이 무서운 힘 앞에서는 자신이 한없이 연약하며, 세상에서의 나의 힘자랑이 헛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어떤 놀라운 능력이 여기 함께 하고 있음도 느끼게 된다. 그 다른 얼굴에 어쩔 수 없이 매달리게 되는 우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 다른 얼굴은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주님이다.
그분은 방금 들은 복음의 말씀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 «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시는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올 것이며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맡기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 (요한 6,37.39).
주님의 이 말씀에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우리가 지금은 아나다시아 할머니의 시신 주위에 모여서 슬퍼하지만, 할머니는 죽음으로 당신의 존재가 사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다. 비록 할머니의 죽은 얼굴이 아직 살아있는 우리들에게는 차갑고, 거절하는 인상을 남겨준다 하더라도 할머니는 우리의 구세주 곁에 나아갔고, 주님께로부터 인자하게 받아들여졌음을 우리는 믿고 희망할 수 있다.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유가족 여러분들도 결코 하느님께로부터 팽개쳐지지 않았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슬프고 비통한 순간에 우리에게 죽음을 뛰어넘는 생명에 대한 희망을 선사하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 내게 주신 사람은 누구나 내가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리는 것, 이것이 나를 보내신 분의 뜻 »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그리고 유가족 여러분,
할머니와의 마지막 만남을 이루려고 하는 바로 지금, 우리가 할머니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할머니께서 살아 계셨을 적에 혹시라도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자비로이 용서하고, 할머니를 영원한 생명인 하느님의 품으로 돌려 보내드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아나다시아 할머니를 따뜻이 받아주시기를 간절히 청하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분명히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들 모두에게 고맙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특히나, 당신의 며느리에게 그동안 참 많이 고마웠고 미안했다고 하실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 악아, 우리집에 시집와서 참 많이 고생했다. 참 많이 고마웠다 »
주님, 임애열 아나다시아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평안한 안식을 허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