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5일 목요일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10년 전 어제를 기억하시는가 ? 2014년 8월 14일, 그날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셨던 날이었다. 교황님의 한국 방문 기간 동안 우리는 참으로 듣고 싶었던 생명이 펄펄 뛰는 말씀들, 특히 «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있을 수 없습니다 »라는 말씀을 들었고, 우리의 온몸을 전율케 하는 교황님의 행보도 보았다. 그럼으로써 광복이라는 것이 빛을 되찾는다라는 의미라면, 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빛을 되찾았다는 체험을 하였다. 동시에 오늘 우리가 성모 승천 대축일을 지내면서 듣게 되는 복음, 곧 마리아의 노래에서 울려 퍼지는 하느님과 교황님의 행보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이 동일한 분이심도 체험했다.
과연 인간에게 희망은 있는가? 이런 비극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과연 하느님을 믿어야 하는지 의심스러웠다. 인류의 미래는 없는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모든 것이 재로 변해버린 폐허 위에서 유럽 교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인간의 존엄성을 말해야 했다. 인간의 운명은 미워하고 파괴하고 죽이는 이 세상의 현실로 끝나지 않는다는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해야만 했고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미래는 하느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천명해야 했다.
어디에다 우리의 희망을 맡기고 발견할 것인가? 그 희망의 새로운 물줄기가 바로 마리아였다. 연약한 인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에 오롯이 자신을 의탁한 이 인간 마리아를 하느님께서 결코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온전히 당신의 영광과 은총으로 끝까지 보호하셨음에 대한 믿음, 곧 승천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의 승천을 경축하는 오늘은 우리 인간의 운명이 인간의 잔혹함의 역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 있음을 자각하자는 날이다.
인간에게 맡겨놓은 미래라는 것이 이다지도 잔혹한 것이었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도 짐승만도 못한 짓거리들을 서슴지 않았지만, 그러나 하느님은 그러한 인간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심을, 그러한 인간에게 희망의 징표를 안겨주고 계심을 선포하기 위해서 교회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설정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은 우리에게 또다시 희망이 선사되는 날, 또다시 꿈꿀 수 있는 힘을 얻는 날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빈부간의 엄청난 차별, 교만과 시기와 질투, 온갖 싸움과 온갖 불행과 온갖 거짓으로 얼룩진 이 세상에서 천국의 행복을 체험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천국의 행복이라는 것이 한낯 일장춘몽이요, 허튼 신기루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헛되고 어리석은 것은 천국의 행복을 죽음 이후로 미루고 사는 것이다. 천국의 행복을 죽음 이후로 미루는 것은 죽음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죽어서 행복을 느낄 수 있겠는가? 살아서 행복을 느끼지 못했기에 죽은 시체나 다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남에게 행복을 전달해 줄 수 있겠는가?
승천하신 성모님은 우리 인생의 희망이며, 우리의 미래요, 우리 모든 인생의 목표다. 하지만, 그 행복은 우리의 생명이 다하고 나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도달해야 할 상태다. 성모님이 오른 하늘나라는 이 지상의 생명이 다 하고 나서 오르게 될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살아 있는 동안 들어가야 할 나라다. 지상에서 천국을 누리지 못하면, 결코 죽어서도 천국을 누리지 못한다. 지상에서 천국을 누리는 길, 그 길이 바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길이며, 그 길이 바로 예수의 길이고, 마리아의 길이다. 그래서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내가 또 하나의 예수가 되는 것이고, 내가 또 하나의 마리아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