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3일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한국 교회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 가운데, 2006년 선임교황 베네딕도 16세께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교회 전례 가운데, 공의회 이전에 드리던 미사방식을 허용하셨고, 라틴어 미사를 적어도 한 달에 한번 이상 봉헌할 것을 권고하셨다. 그 미사는 사제가 신자들을 바라보면서 미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제단을 보면서 미사를 드리는 방식이었다. 미사 언어도 자국어가 아니라, 라틴어였다. 베네딕도 16세의 허용과 권고에 대해서 처음에는 많은 주교님들과 신학자들이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교황님의 의중은 다른 데에 있었다. 지난 1960년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교회 밖으로 나간 이들이 있었다. 프랑스의 르페브르 라는 주교를 따르던 한 무리였는데, 그들은 미사도 옛날식으로 드리고, 모든 생활 양식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방식을 고수했었다.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은 작은 이들을 결코 업신여기지 않는 이들이라고 오늘 복음을 통해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신다. 가난이 죄가 되는 이 나라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 주변뿐만 아니라, 우리들 한가운데에도 작은 이들이 참 많다. 예수 시대에 사람 대접도 못 받던 어린아이들, 그런 어린 아이들도 많고, 잃어버린 양도 많다. 길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고, 울타리 밖에서 외로이 벌벌 떨며, 지내는 잃어버린 양들이 참으로 많다.
냉담하는 신자들만 잃어버린 양들이 아니다. 교회의 뜻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이들만 잃어 버린 양들이 아니다. ‘땅의 버러지, 암 하아렛츠’라고 불리웠던 이들, 율법과 계명을 지키고 싶어도, 가방끈이 짧아서 못 지키고, 삶의 조건들이 허락되지 않아서 못 지켰던 이들, 그들이 모두 다 2천년이 넘도록 우리 주변에, 우리 한가운데에서 살아 가고 있다. 그들을 찾아 내기 위해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의 양들을 내버려 두고, 두 손 두 발 걷고, 달려가는 그런 목자가 우리의 주님이라면, 우리의 아버지라면, 그 아버지를 보여주고, 그 주님을 보여 주어야 하는 사람들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입추가 지나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긴 하지만, 그래도 낮은 덥다. 하지만, 우리네 사는 이 나라, 이 땅은 빙하기인 듯하다. 말 잘 하는 사람보다, 손이 부지런한 사람, 발이 부지런한 사람이 참으로 그리운 때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이 더운 날, 나 아닌 너를 향해 달려 가는 사람, 그 달리기로 말미암아 땀이 비 오듯 하더라도, 그 열정의 삶이 곧 이열치열하는 데, 가장 좋은 것임을 알려주는 것 같다. “덥다, 덥다” 하지만 말고, “소나기 한 줄기 안 내려 주나”, 하늘만 쳐다 보지 말고, 내가 먼저, 이 살인적인 더위, ‘가난과 소외와 내버려짐’이라는 더위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이들에게 시원한 등목이라도 할 수 있는 물 줄기 하나 되어 봄이 어떠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