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1일 연중 제19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오늘 연중 제19주일 제 1독서와 복음은 빵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제1독서에 나오는, 천사가 준비해놓은 뜨겁게 달군 돌에다 구운 빵과 물 한 병은 엘리야에게 힘을 주는 것이었다. 엘리아는 그 음식으로 힘을 얻고, 밤낮으로 사십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되었다.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라고 소개하시고, 자신을 먹으면, 생명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결국 성체 성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빵이 미사 성제를 통해서 거룩한 분의 몸이 되고, 그 몸을 받아 모시는 사람들도 거룩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성체를 영하게 됨으로써,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성체가 된다. 그렇다면, 지금 내 옆에서 내 앞에서 내 뒤에서 나와 함께 미사를 드리고 있는 사람에게 내가 혹시라도 잘못한 게 있다면, 혹시 그에게 미운 마음을 품고 있거나, 그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체가 될 그를 미워하는 것이고, 성체가 될 그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들을 갖는다과 같다. 그래서 성체가 훼손된다는 것은 하느님이 훼손된다는 것이며, 그 성체를 먹게 되는 사람들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성체가 훼손되는 일은 우리들 삶의 생생한 자리에서뿐만 아니라, 이 나라 이 땅에서 너무나도 많이, 너무나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생명이 경시되고, 사람으로 났지만,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가장 기본적인 인권마저도 무시되는 일들이 모두 다 성체가 훼손되는 일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 훼손당하고 있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 나고 있다. 하느님이 훼손당하고 있고, 하느님이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 빵을 먹으며 생명을 키워나가던 피조물들이 훼손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모른 체 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성체 모독, 성체 훼손의 범죄에 침묵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것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 사랑 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
이 말씀대로라면, 하느님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우리도 고통을 당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이고, 우리가 사랑 안에서 살아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고통 받는 피조물과 함께 아파하고,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그들과 함께 삶의 길을 걷는 것이 늘 피조물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 이 미사 때마다 빵이 되어 우리에게로 오시는 하느님을 받아 모시는 우리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살인적인 뙤얏볕 쏘여 가면서 안 그래도 말 잘 안 듣는 몸뚱아리 끌고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성체를 받아 모시고,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체가 되기 위해서이다. 신앙인으로서 살아 간다는 것은 그래서, 내가 예수가 되는 것이고, 내가 마리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금 여기 계시다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실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성모님이 지금 여기 계시다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실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인데, 내가 마리아인데, 내가 지금 여기 이 나라 이 땅에서, 내 삶의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사람이 신앙인이다. 내가 예수가 되고, 내가 마리아가 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세례식 때에 들었던 « 참 하느님을 알고,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 »이다.
그런데 하나 물어보자: 예수를 알고, 마리아를 알고, 예수가 되어 살기 위해, 마리아가 되어 살기 위해,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