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7일 수요일 엄익성 레오 장례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병자성사 때마다 듣는 복음은 중풍으로 몸져 누운 백인대장의 하인을 고쳐달라고 애원하는 백인대장과 예수님이 나눈 대화다.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엄익성 레오 형제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방금 읽은 복음에 나오는 백인대장이다. 사랑하는 하인을 위해서 오늘날로 치면, 군대의 중대장에 해당하는 로마 제국의 백인대장이라는 자신의 지위, 게다가 식민지 상황아래에서 식민지의 백성이라면 감히 근접하기도 어려운 그 지위를 다 내팽개치고 예수님 앞에서 겸손함을 보여준 이름 모를 이 백인대장 말이다. 이 백인대장은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관습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관습을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는 예수님께 이런 식으로 겸손되이 말씀드렸다 : «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

지난 4월 환자 영성체날 레오 형제님 댁을 방문했다. 새파랗게 젊은 신부를 진심으로 예의를 갖추고 대하는 형제님은 마치 백인대장이 주님을 대하는 것 같았다. 바쁘실 텐데, 굳이 당신에게까지 오실 필요 없다며 지난 4월 이후, 환자 영성체를 청하지 않은 마음 역시, 백인대장의 마음을 쏙 빼 닮으신 것 같았다.

지난 금요일, 낮미사를 마치고, 따님인 엄 아녜스 자매님과 레오 형제님의 큰사위와 함께 한솔병원을 찾았다. 종부성사를 해 드리기 위해서였다. 병실 침상에 누워 계시다 신부가 온 것을 보시고는 한사코 침상에서 일어나시려 했다. 그 순간에도 나는 겸손한 그 백인대장이 떠올랐다.

종부성사를 받았던 금요일 오후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소식을 따님으로부터 들었다. 속으로 ‘이제 곧 하느님 곁으로 가시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주일 낮미사를 마치고 아녜스 자매님을 비롯해서 선교분과 사람들과 자매님의 친한 신앙동료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을 먹고, 차를 나누던 오후 2시 조금 넘어가던 무렵, 아녜스 자매님이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소식을 나에게 차분히 전하면서 병원으로 갔다. 개인적으로 나는 엄익성 레오 형제님의 인품을 잘 알지 못하지만, 나를 대하셨던 형제님의 모습과 그런 형제님을 아버지로 둔 따님의 인품으로 유추해 보건대, 참 바르게 사셨던 분이시라 여겨진다.

2024년 여름이 참 뜨거웠다는 기억을 당신의 가족들에게 남기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더운 여름의 한 가운뎃날, 엄익성 레오 형제님은 하느님께로 돌아가셨다. 사제인 내 앞에서 참으로 겸손하셨던 형제님은 분명, 주님 앞에서도 겸손한 모습을 보이실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겸손한 모습을 보시는 주님은 레오 형제님을 보며 빙긋이 미소지으실 것 같다.

레오 형제님, 이제 편히 주님 곁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소서. 이 자리에 모인 모두는 영겁의 시간 속에서 잠시 헤어짐을 잠시 슬퍼하지만, 머지 않은 훗날 다시 저 하늘에서 만날 것을 믿고 희망하고 또 그렇게 알고 있으니, 편히 주님 곁으로 가소서.

삶과 죽음의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 부활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요, 구세주로 믿으며 영원한 생명을 희망해 온 당신의 아들 엄익성 레오를 이제 당신 손에 맡기오니, 그의 소소한 잘못들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그가 따스한 당신 품 안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해주소서. 남아 있는 저희는 당신의 너그러우심을 본받아, 혹 있을지 모를 레오 형제의 허물을 용서하겠나이다.

주님, 엄익성 레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죽은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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