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파타

말을 한다는 것,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오로지 인간만이 가진 특징입니다. 동물들도 소리를 내고 몸짓을 하여 의사소통을 하긴 하지만, 그것을 언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듣고 말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입니다. 인간은 듣고 말함으로써 단순히 정보만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을 나누고, 그럼으로써 문화를 형성하고 공동체를 이룹니다. 바꾸어 말하면 듣고 말하기가 안되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힘듭니다. 이게 안되면 인간으로서 존엄과 품위가 상당히 훼손당합니다.

저는 사제 서품을 받고 오랜 시간 동안 외국에서 살 기회가 있었습니다. 외국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은 역시나 듣고 말하는 게 자유롭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여온 사제들과 함께 살았는데, 듣고 말하는게 시원찮으니 사제들과의 대화에도 쉽게 끼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식사 시간도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습니다. 자존심도 상당히 상처받았습니다. 이렇게 듣고 말하는 것은 정보 교환이나 의사소통을 넘어서는 인간 존재 전체에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듣고 말하기가 잘 되지 않는 것은 단순히 의학적이고 생리적인 문제만은 아닙니다. 정신적 압박 때문일 수도 있고, 또는 듣고 말하기가 안되어서 정신적 심리적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독재자는 민중이 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에 듣고 말하기가 힘든 것은 사회적인 병리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귀먹고 말 더듬는 것은 총체적으로 비인간적 상태와 상황, 비구원의 실존을 의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치유해 주신 주님에 대해서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주님의 치유가 단순히 의학적인 것만도 아니고, 정신적인 또는 심리적인 것만도, 또는 사회적인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주님의 치유는 총체적이고 전인적인 것입니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회복시켜 주시고 인간으로서 충만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치유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좀 더 깊이 묵상해 볼 것은, 가장 인간다워지는 것,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넘어서 하느님을 향해 서있을 때 인간이 가장 인간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영원한 것을 갈망하고, 오로지 인간의 마음이 하느님을 찾습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기도하고, 인간만이 경험세계 안에 있는 인생에 만족하지 않고 그 너머의 의미를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으로 인간이고자 할 때, 우리는 초월을 향해 열려있고, 하느님을 향해 서있게 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쉬신 다음, “에파타열려라하고 말씀하십니다. 단지 귀와 입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모두가 하느님을 향해 열려있으라는 뜻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는 주님 구원의 날에 이루어질 일들을 묘사하며,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하고 말합니다. 주님의 치유는 우리가 하느님을 향해 서있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향해 서있을 때, 주님의 구원이 시작됩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며, 그렇다면 나는 참으로 귀가 열려있고, 입이 열려있는지 질문해 봅니다. 내 자신과 내 삶이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지 질문해 봅니다. “주님,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제 입이 당신의 찬양을 널리 전하오리다”(시편 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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