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상태
탁은수 베드로
광안성당 · 언론인
어느새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합니다. 이 계절의 바람은 인생의 가을쯤을 지나는 중년 남자를 감상에 젖게도 만듭니다.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바람 같은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까?” 바람의 시원(始原), 내 생명의 근원을 찾아가다 보면 하느님 나라에 닿을 것도 같습니다. 조용필이 부른 ‘바람의 노래’에는 “바람의 노래를, 꽃의 지는 이유를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이 들면서 인간의 지혜와 감각으로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걸 자주 깨닫게 됩니다. 이 깨달음이 믿음의 시작 아닐까요? 히브리서에도 “믿음은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이라고 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 중에 미사 강론 때 들은 ‘믿음의 상태’란 단어가 마음에 꽂혔습니다.
내 믿음은 어떻게 나에게 왔을까요? 내 몸은 늙고,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데 내 안의 믿음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요? 믿음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데 혹시 내 마음의 돌밭이나 가시덤불 속에서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따져보니 믿음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입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내 믿음에 대한 스스로의 바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내 믿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를 더해 뽐냄 없이 축적되는 고색창연의 기품을 갖추면 좋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차오르는 샘물처럼, 생명을 머금은 어린잎처럼 늘 새롭고 싱싱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 믿음의 방식만을 고집하는 완고함 대신 너그럽게 열려있고 소통할 수 있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몸을 위해서는 건강검진도 하고 영양제도 먹어왔지만 믿음의 상태를 챙겨보고 가꾸어 온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믿음의 양식은 영성체라고 했습니다. 생명을 위해 햇빛, 물, 공기가 필요하듯 믿음을 위해선 기도와 감사, 희생이 필요할 겁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이미 믿음의 끝판왕이자 절대 고수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세상의 명예와 생명마저 내려놓고 하느님에 대한 순수하고 굳센 믿음을 지켜낸 이 땅의 순교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신념’과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마침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신앙’의 절정으로 승화시키며 믿음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순교자 성월은 죽은 이들의 기념뿐 아니라 살아있는 이들이 믿음의 동참을 새롭게 결심하는 시기입니다. 내 믿음을 가다듬고 신앙 선조들의 순교 정신을 따르기 위해 작은 노력이라도 보탠다면 9월, 이 땅은 믿음의 상태가 가장 위대한 시기가 될 것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