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海)

가톨릭부산 2024.09.04 14:23 조회 수 : 12

호수 2830호 2024. 9. 8 
글쓴이 박종주 신부 

사랑해(海)



박종주 베드로 신부
남천성당 주임

 
   어느 신부님께서 미사 강론 시간에 신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신자들이 한참 고민하자, 신부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셨습니다. “그 바다는 바로 ‘썰렁해(海)’입니다.” 신부님께서 다시 질문하셨습니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바다는 어디일까요?” 신자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답을 찾으려 애쓰자 신부님께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 바다는 바로 ‘사랑해(海)’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모두의 마음이 항상 따뜻한 사랑의 바다 같기를 바란다며 강론을 마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한 자매님이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집에 돌아가 남편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남편이 고민하며 답을 하지 못하자, 자매님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이럴 때 당신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있잖아요.”라고 했지요. 남편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그만 “고마해”라고 외쳤답니다. 자매님이 진정으로 듣고 싶었던 말은 “사랑해”였는데 말이지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기 말을 잘 들어주기를 바랍니다. 부모는 자식이, 부부는 서로가, 친구나 동료들은 각자가 자신의 말을 잘 들어 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신의 말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지위나 재물 같은 외적인 요소를 활용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런 방식은 결국 사람들 간의 소통을 어렵게 만들고 상대방의 말을 더 듣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마르 7,32)를 치유해 주십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신체적인 치유를 넘어,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귀먹음’과 ‘말 더듬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치유를 받아야 할 귀먹은 이들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려 하거나, 자기도취에 빠져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섬기는 사람이 되어 모든 이의 종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섬기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그들이 기뻐할 일을 하며, 그들의 필요를 이해하고 돕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러한 섬김의 삶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말을 더욱 잘 듣고,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섬기며 모든 이의 종이 되신 예수님을 본받는 것은,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이사 35,6)는 제1독서의 말씀처럼 나날이 새로워지는 삶이며 영적 세계에 눈을 뜨는 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서로를 섬기고, 기쁨을 나누며, 마음을 열어 서로 이해할 때, 그때에 비로소 우리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고마해’가 아니라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호수 제목 글쓴이
2888호 2025. 9. 14  나를 죽이고 십자가를 지는 삶 file 박재범 신부 
2887호 2025. 9. 7  더 크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file 이재원 신부 
2886호 2025. 8. 31  행복을 선택하는 삶 file 박호준 신부 
2885호 2025. 8. 24  ‘좁은 문’ file 이영훈 신부 
2884호 2025. 8. 17  사랑의 불, 진리의 불 file 이영창 신부 
2883호 2025. 8. 15  마리아의 노래-신앙인의 노래! 김대성 신부 
2882호 2025. 8. 10  그리움, 기다림, 그리고 깨어있는 행복! file 김대성 신부 
2881호 2025. 8. 3  “만족하십시오.” file 이재혁 신부 
2880호 2025. 7. 27  “노인(老人)=성인(聖人)” file 정호 신부 
2879호 2025. 7. 20  마르타+마리아=참으로 좋은 몫 file 이균태 신부 
2878호 2025. 7. 13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file 계만수 신부 
2877호 2025. 7. 6  말씀 전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 file 정상천 신부 
2876호 2025. 6. 29  흔들린 고백 file 천경훈 신부 
2875호 2025. 6. 22  새 계약 file 신문갑 신부 
2874호 2025. 6. 15  하느님의 얼굴 file 조영만 신부 
2873호 2025. 6. 8  보호자시여, 저희의 닫힌 문을 열어주소서! file 권동국 신부 
2872호 2025. 6. 1.  승천하신 예수님, 저희도 하늘로 올려 주소서 file 이상일 신부 
2871호 2025. 5. 25.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file 맹진학 신부 
2870호 2025. 5. 18.  예수님처럼 사랑하기 file 권동성 신부 
2869호 2025. 5. 11.  내 인생의 밑그림을 그리신 하느님! file 박규환 신부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