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828호 2024. 8. 25 
글쓴이 원성현 스테파노 
하느님과의 일치를 통한 마음의 여유를 기대하며

 
 
원성현 스테파노
부곡성당·부산가톨릭대학교 컴퓨터정보공학과 교수
 
   전공은 아니지만 경영에 대한 기본 지식 정도는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학 2학년 때 정년을 얼마 안 남긴 원로 교수님의 ‘경영학원론’ 강의를 수강했다. 이 교수님은 방학 때마다 자신이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의 대학을 방문하여 강의에 활용할 자료들을 모으고, 아직 미국 밖으로 퍼지지 않은 신간도서를 구입하여 다음 학기 자신의 강의 교재로 삼으시는 등 나름 좋은 강의를 위해 노력하셨다. 그런데 하루는 강의 중에, “나는 복사기가 지금보다 더 보편화되는 것이 두렵다. 지금은 새로운 이론과 지식이 담긴 신간도서를 누구보다 빨리, 때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손에 넣고 있기 때문에 이걸로 학생들한테 잘난 척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어디서든 손쉽게 복사기를 사용할 수 있다면 학생들이 나보다 먼저 지식을 습득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라며 농담을 하셨다. 
 
   1990년대까지는 강의 1시간 중 절반은 칠판에 판서하느라 보내고 나머지 절반으로 강의를 하다 보니 교재 1권을 다 끝내기 쉽지 않았으나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수업의 보조도구로 활용하면서 소위 프레젠테이션 도구를 이용하여 만든 강의 자료를 학생들에게 미리 배포하다 보니 순전히 강의 1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서 좋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준비해야할 강의 분량이 만만치 않게 되었다. 심지어 지금은 학생들이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동시에 챗봇이나 유튜브로 교수의 말이 맞는지 확인까지 하는 시대이니 교수자로서의 부담은 커져만 간다.
 
   비단 대학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의 발전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고, 생성되는 정보와 지식의 양도 엄청나다. 잠깐 한눈을 팔았다가는 만회할 수 없을 정도로 뒤처지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컴퓨터공학이라는 첨단 분야를 전공으로 하는 학자답지 않게, 전 세계의 지도자들이 모여 첨단 기술의 속도 완급 조절을 논의하면 좋겠다는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사는 우리의 마음은 늘 급하고 거칠어지기 마련이고, 그런 마음을 근간으로 하여 나타나는 행동이 아름다울 리가 없지 않은가! 2024년 여름의 무더위와 싸우는 지금, 미사를 봉헌하는 이 시간만이라도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뒤로 하고 오직 하느님과 일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급박함에 찌든 우리 얼굴에서 천사의 모습을 잠깐이라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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