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가 스승을 떠나는 까닭은

가톨릭부산 2024.08.21 10:37 조회 수 : 13

호수 2828호 2024. 8. 25 
글쓴이 손태성 신부 

제자가 스승을 떠나는 까닭은

 
손태성 신부
하단성당 주임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요한 6,66) 
 
   누군가를 스승으로 모시고 그분께 자신의 인생을 거는 사람을 제자라고 부릅니다. 참스승을 만났을지라도 제자가 스승을 떠난다면 가장 불행한 일이지요. 그런데도 제자들이 스승 예수를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제자는 스승의 말을 듣고 스승의 깨달음을 자신의 것으로 하고자 열망하지만 제자는 스승의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스승은 깨닫고 가르침을 베풀었지, 듣고 깨달은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깨달음은 언어도단 불립문자(言語道斷 不立文字)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가 스승의 깨달음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고자 한다면 잘 듣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난 이유입니다. 스승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고 그 말이 귀에 거슬렸던 것, 그로 인해 결국 떠나감은 그들의 ‘들음’의 자세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로마 10,17) 믿지 않는 자들은 듣지 않은 자들입니다. 스승의 말을 듣되 듣지 못한 자들은 오히려 자신의 ‘알음알이’의 세계를 견고히 쌓아가고 조각난 지식들을 진리라고 착각하였습니다. 화려한 언어들과 정교한 논리들을 스승의 가르침과 동일시하며 자신의 뜻에 스승이 동의할 것으로 믿게 되거나(루카 9,54 참조), 높은 자리를 원하며(마르 10,35 참조), 머지않아 스승을 배신하는 낭패를 보기도 합니다.(요한 6,71 참조) 
 
   지금 가만히 들어보십시오. 나의 판단과 생각을 잠시 내려놓으십시오. 자연의 소리를, 세상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듣는 연습을 하면, 어느 순간 그들과 내가 일체(一體)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마저 없는 완전한 들음이 될 때, 비로소 스승의 마음을 듣게 되고 그분이 나를 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제자도 더 이상 듣고 깨닫는 사람이 아니라 깨닫고 말하는 스승처럼 되었습니다. 스승과 하나가 되어버려 떠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말하고 신이 듣고 
신이 말하고 내가 듣고
서로 말하지 않고 서로 듣고
서로 말하지 않고 서로 듣지 않고
호수 제목 글쓴이
2833호 2024. 9. 22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박혁 신부 
2832호 2024. 9. 17  우리는 세상에 초대된 ‘손님’입니다. file 곽길섭 신부 
2831호 2024. 9. 15  스트레스 No! 고난 Yes! file 곽길섭 신부 
2830호 2024. 9. 8  사랑해(海) file 박종주 신부 
2829호 2024. 9. 1  “친절에 사랑을 더하면 즐거운 곳이 될 것입니다.” file 이상일 신부 
2828호 2024. 8. 25  하느님과의 일치를 통한 마음의 여유를 기대하며 원성현 스테파노 
2828호 2024. 8. 25  제자가 스승을 떠나는 까닭은 file 손태성 신부 
2827호 2024. 8. 18  참된 양식으로 살아가는 참된 삶이란? file 이강수 신부 
2826호 2024. 8. 15  하늘에 오르신 어머니 김현일 신부 
2825호 2024. 8. 11  익숙함에 대한 불신앙 file 김현일 신부 
2824호 2024. 8. 4  영원한 생명의 양식 file 김종엽 신부 
2823호 2024. 7. 28  그리스도인의 시각(視角) file 박성태 신부 
2822호 2024. 7. 21  전쟁 같은 삶과 주님 안에서의 쉼 file 김수원 신부 
2821호 2024. 7. 14  그대, 지금 견딜만 한가? file 권경렬 신부 
2820호 2024. 7. 7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 file 최현욱 신부 
2819호 2024. 6. 30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 5,34) file 김정렬 신부 
2818호 2024. 6. 23  “나를 구원할 분이 내 인생이라는 배에 함께 타고 계십니다.” file 김원석 신부 
2817호 2024. 6. 16  아스피린 한 병 file 석판홍 신부 
2816호 2024. 6. 9  귀 얇은 신앙인? file 김윤태 신부 
2815호 2024. 6. 2  “그리스도의 몸”, “아멘” file 박기흠 신부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