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826호 2024. 8. 15 
글쓴이 강은희 헬레나 
그분의 어머니를 뵙고 싶어지는 때

 
강은희 헬레나
부산가톨릭신학원 교수
 
   요즘 대부분의 아파트에는 공동현관이 있어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끔 되어 있다. 보안을 위한 것이기는 하나, 양손에 짐이라도 들었을 경우엔 번거롭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 앞에서 공동현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종종걸음으로 뒤따라 들어가기도 한다. 
 
   그날도 귀갓길에 장을 본 터라 한 손엔 가방을, 다른 한 손엔 장바구니를 들고서 지하 주차장을 걷고 있었는데, 저만치서 조그만 여자아이 하나가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아, 저 아이 뒤따라 들어가면 편하겠구나’ 싶어 걸음을 빨리하였다. 몇 발짝을 종종걸음으로 걷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가 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쫓아온다고 느끼면 불안해질 수도 있겠지. 그래,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비밀번호 누르는 것이 무슨 대수라고.’ 그래서 다시 걸음을 늦추었다. 
 
   그 아이가 들어간 후 문이 닫히고 조금 지나 나도 공동현관을 열고서 복도로 들어섰다. 코너를 돌아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려던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아이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문열림 버튼을 누른 채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어머나, 나를 기다려 준 거예요? 고마워요!”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그 아이도 작지만 또렷한 발음으로 인사를 하였다. 눈이 맑고 단정한 표정을 한 예쁜 아이였다. 
 
   엘리베이터가 오르는 동안 내 머릿속은 ‘이 아이의 어머니가 누구일까?’ 하는 궁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아이는 자신의 뒤로 빨라졌다가 중도 포기(?)하는 걸음 소리를 들었고, 자신의 뒤로 문이 닫혔다가 다시 열리는 소리를 들었으며 그래서 나를 기다려 준 것이다. 자기 것 챙기며 살기도 바쁜 세상에 남을 위한 친절과 배려라니! 이러한 품성의 아이를 길러낸, 얼굴도 모르는 그 어머니와 차라도 한 잔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싶어졌다. 
 
   불과 몇 분간의 짧은 사건이었지만, 이 일은 오래오래 내 마음속에 머무르며 생각의 모이가 되어주었다. 사람들이 주님을 찾고, 또 그분의 어머님을 만나 뵙게 되는 계기가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기에, 이천년 전 나자렛의 동네 주민들이 그랬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주님과 성모님을 뵐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의 가르침에 충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그 가르침의 원천이신 주님을, 그리고 그 주님을 기르신 어머님을 찾아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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