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4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씨뿌리는 사람, 누구인가? 눈씻고 성경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씨 뿌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곳은 한군데도 없다. 다만, 유추해서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씨뿌리는 사람은 “말씀을 뿌리는”(마르 4,14) 사람, 바로 우리들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 사람이 되신 하느님 당신 자신이시다. 그리고 그 씨라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하느님의 말씀이다.
씨가 떨어지는 장소는 길가, 돌밭, 가시덤불, 그리고 좋은 땅이다. 어쨌거나 결국 씨가 떨어지는 곳은 땅이다. 무중력 상태라면 모를까, 씨를 떨어뜨린다고 해서, 공중에 그냥 떠 있지는 않는다. 씨 뿌리는 사람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씨를 뿌린다는 것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당신의 일을 하실 때에, 편애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가 좋은 땅, 좋지 않은 땅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땅에 내리듯이 말이다.
이렇게 말씀을 건네시고, 세상으로 다가오려고 하시는 하느님, 세상을 껴안으려고 하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믿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느냐, 노력하지 않느냐, 곧 하느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일차적으로 선택의 문제다. 믿음의 삶을 살겠다고 선택을 하고, 또 그 삶이 요구하는 바를 충실하게 따르려고 노력할 때에는 오늘 복음의 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말하듯이, ‘좋은 땅’이 되어서 백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우리들에게 하느님과 인간, 하느님과 세상 사이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이야기한다. 하느님에 대한 신비를 알려주고, 그 신비를 대하는 세상의 태도를 시사해주고, 하느님과 세상, 이 둘의 관계를 알려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 이야기를 듣는 우리들에게 묻는다: “나는 하느님과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씨앗과 길가의 관계인가? 씨앗과 돌밭의 관계인가? 씨앗과 가시덤불의 관계인가? 씨앗과 좋은 땅의 관계인가?
이 물음에 답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그러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씨가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곧 하느님께서 먼저 말씀을 건네시면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세상을 향해 먼저 당신 스스로 찾아오신 분이다. 우리가 먼저 그분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원천은 하느님의 자기 드러내심(계시)이다. 이것을 잊고, 하느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잣대만을 가지고, 자신의 원리만을 가지고, 내 나름대로,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그것은 한낯 삽질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린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내 마음대로 하느님을 믿어버리면, 그것은 또 하나의 죄를 낳는다. 바로 교만이라는 죄이다. 상대방은 받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데, 내 기분에 스스로 취해서 누군가에게 나의 재산이나, 나의 소유, 혹은 나의 수고를 주려고만 하면, 그것은 자기만족에 빠진 기만이고, 또 다른 폭력이 된다. 하느님과 나와의 여러 관계의 모습들 중에서 믿음이라는 관계는 하느님을 나의 주님으로,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관계인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내가 낸데, 내가 대장인데, 내가 최고인데”라는 자기 중심의 삶에서 “나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고 있다, 그분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싶다, 그분이야말로 내 삶의 참 주인이시다”라는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옮겨가는, 참으로 힘든 여행이다. 하지만, 그 여행에는 분명 어려움도 있겠지만, 그 여행은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게 하는 좋은 땅이 되게 하는 여행이다.
우리 함께 그 여행 한번 신나게 떠나봄이 어떠하시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