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8일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왜 예수를 믿는가 ? 왜 예수에게 오는가 ? 오늘 복음은 간단하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알려준다 : «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 사는 것이 힘들어서 오고, 사는 것이 서러워서 오고, 사는 것이 괴로워서 예수에게로 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안식을 주겠다고 했으니, 가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예수에게 가면 내 멍에가 없어지고, 내 짐이 없어지는가? 예수께서도 멍에가 편해지고, 짐이 가벼워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지, 멍에와 짐이 없어질 것이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예수에게 가더라도 별로 변한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삶이 가져다 주는 고생과 무거운 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삶의 멍에는 그대로이다. 예수 믿는다고, 성당 다니고 영성체 한다고 내가 마셔야 할 고난의 잔이 치워지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더 나에게 많은 짐을 씌우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분명 있다. 그러나 한 가지가 달라진다. 진정으로 예수께서 가르치신 바를,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깨닫고, 예수의 길을 걸어보고, 예수의 삶을 내 삶 안에서 실천하다 보면, 나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저 진리를 깨닫고 나면 내 삶의 멍에는 그대로이나 그 멍에가 편해지고, 짐은 그대로이나 그 짐이 가벼워진다.
이것이 신비이고, 이것이 신앙이 가져다 주는 것이다. 정말로 편해서 편한 멍에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가벼워서 가벼운 짐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때문에, 그와 함께 하기 때문에, 편할 수 있고 가벼워 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예수에게로 가서 안식을 얻겠다고 하면서도 자꾸 힘겨움은 피하려고만 하게 되고, 고통은 제거되는 것만이 능사이고 불편은 해소되는 것만이 은총이고 능력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믿으면서도 불평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모두 다 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가? 아니다.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을 뿐이다.
산다는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산다는 것이 힘겹고, 어렵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 살아내고 살아가는 » 것이다. 그리고 신앙인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 지금 이 순간, 그리고 내가 발 딛고 있는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 »라는 물음에 대한 응답으로서 « 하느님과 함께 살겠다 »는 ‘마음가짐’이다. 그 마음가짐이 바로 ‘신앙’이다. 내가 기쁠 때에, 그분도 기뻐하고, 내가 슬플 때에 그분도 슬퍼하며, 내가 눈물을 흘릴 때에 그분도 눈물을 흘리며, 내가 서러울 때에, 그분도 서러움에 땅을 치고 통곡하신다는 하느님의 현존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의 삶이다. 내가 외로울 때에는 나에게로 살며시 다가와 소주잔을 기울여주고자 하시는 주님이 바로 내 곁에 계심을 믿고 사는 것이 바로 신앙의 삶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어제는 제헌절이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공휴일이었지만, 이제는 더이상 공휴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제는 한 나라의 국민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날이었다. 헌법이 지향하는 삶의 양식,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라는 이 삶의 양식이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는 참으로 먼 이야기,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그 멀게만 느껴지고,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만 느껴지는 그 이야기를 가깝게 느끼게 하고, 우리 이야기로 느끼게 하려는 노력들 또한 신앙인이 걸어가야 하는 삶의 모습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만 사는 것도 그리 쉽지 않은데, 거기에다가 신앙인으로서도 살아 가야 한다는 이 현실이 참으로 무거운 짐이요, 멍에로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신앙이 있다. 불의에 항거할 수 있고, 거짓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이 계신다. 이를 믿고 사는 삶이 바로 신앙의 삶이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