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요일 성모신심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처음!!! 처음이라는 말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첫만남, 첫사랑! 처음이라는 말은 때묻지 않았다는 의미로도 쓰이기도 하고, 새로움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시간상으로나 순서상으로 맨 앞을 의미하기도 한다. 처음은 어떤 기간이나 사건, 혹은 역사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역사의 시작이라는 점에서는 한 역사의 의미 부여의 순간이 바로 처음이기도 하다.
7월 첫 토요일인 오늘 성모 신심미사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첫 기적 이야기를 복음으로 들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 사건은 하느님 나라에서의 삶,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을 보여주는 표징들 가운데 ‘원표징’(Signe originaire)이다. 이 첫 기적은 4복음서의 나머지 모든 기적들의 의미를 풀어내는 열쇠가 된다. 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이 사건은 그저 2천년 전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다. 사실, 예수께서 행하셨던 기적들은 하느님과의 만남과 그 만남으로 이뤄지는 구원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나를 변화시키는 사건, 무지의 사람이 지혜의 사람으로, 미움의 사람이 사랑의 사람으로, 세상에 속했던 사람이 하느님의 사람으로 변화하는 사건을 만들어 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만남 자체가 바로 기적이다.
우리는 세례를 받고 결코 죽음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인호를 받고 살아간다. 나자렛 사람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 사람이 되신 하느님으로 고백하며, 그분의 일을 그분의 뒤를 이어 하고, 그분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생명의 길을 걷지 아니하고, 죽음의 길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에 맞서, 정의의 길을 걷지 아니하고, 불의를 못 본 체하며, 살아 있는 생명 그 자체에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 같은 이 세상에서 한 줄기 밝은 햇살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로 변한 것이다. 그 일을 위해서, 세례 때에 우리에게 성령이 부어졌다. 사제가 되게 하고, 예언자가 되게 하고, 왕 혹은 여왕이 되게 했다. 우리가 세례를 받았을 때에, 우리 역시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기적을 체험했고, 우리가 바로 ‘포도주’로 바뀐 ‘물’이었음을 체험한 것이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모든 은사가 지향하는 것은 공동선이라고 했다. 생명, 사랑, 평화, 공동선 등, 이러한 보이지 않는 가치, 그러나 하느님을 드러내는 가치가 바로 우리들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길의 방향이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은 겁 많고, 힘없고, 어찌 할 줄 모르는 우리를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성체성사를 통하여, 변화시키신다. 우리들의 썩어 없어질 몸뚱아리를 당신의 몸이 되게 하시고, 당신의 피가 되게 하신다. 생명이 없는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시는 분은 그 몸을 먹고 그 피를 마시는 우리를 생명 있는 존재, 생명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가 되게 하신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께서 첫 기적을 일으키신 것은 성모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읽어내셨기 때문이다.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 대부분은 잔칫집에 술이 떨어지면 짜증을 내지, 안타까워하지는 않는다. 남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남의 일을 지나치게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사람을 두고 오지랖이 넓다고 한다. 지나치게 넓은 오지랖은 사람을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오지랖이 너무 없어도 냉냉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다.
잔칫집에서 술이 떨어졌다고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잔치를 열어본 사람이거나, 잔치 준비하는 일을 해본 사람이다. 성모님의 이런 마음을 두고 거룩한 오지랖이라는 표현을 써도 된다면, 성모님의 오지랖이야말로 우리들 신앙인들이 본받아야 할 오지랖이 아닐까 싶다.
너부터가 아니라 나부터 먼저라는 심보, 나밖에 모르는 나뿐 심보가 만연해 있는 우리 시대에 성모님의 거룩한 오지랖은 뜨거운 여름 한줄기 시원한 바람으로, 시원하게 한바탕 쏟아 붓는 소나기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껏 당연시하며 살아온 이기주의적인 삶의 방식을 성찰케 하는 죽비로 다가온다.
오늘 7월 첫 토요일 성모신심미사의 복음은 나에게 예수님의 삶의 방향에 대해서 그리고 성모님의 마음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게 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