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하느님이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이 땅에서 죄를 용서할 수 없다는 율법학자들의 생각은 구약성경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전적으로 옳다. 구약성경에서 죄에 대한 용서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일에 속한다. 개인이든 단체든 사람의 죄를 용서해주는 분은 오직 하느님이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의 눈에 죄의 용서와 병의 치유를 함께 베푸시는 예수라는 떠돌이 설교자, 혹은 떠돌이 예언자는 그저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그들의 눈에는 예수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함께 하심, 하느님의 현존이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중풍병자를 들고 오는 사람 이야기는 마르코 복음서에도 나온다(마르 2,1-12). 마르코 복음서에 따르면 중풍병자를 들들 것에 들고 온 사람은 네 사람이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마태오 복음에는 중풍병자를 들고 온 사람들이 몇 명인지 나오지 않는다. 그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들이 그 중풍병자와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인지, 그들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오늘 복음은 그들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그 중풍병자를 치유해주신다.
누군가를 도우면서 살아간다는 것, 그 삶이 그리 쉬운 삶은 아니다. 나 혼자 살기도 힘들고, 내 가족 먹여 살리기도 빡빡한 것이 지금의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누군가를 도우면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시대 착오이고, 시대를 거슬러 살아가는 방식일수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2000년 전이나 오늘이나, 꼭 오늘 복음의 율법학자들 같은, 초치는 떨거지들이 설쳐댄다. 중풍병자를 치유하는 예수님을 두고 의료법을 들먹이고, 의사 자격증 들먹였던 사람들, 그들은 시대는 바뀌었어도, 장소는 바뀌었어도 여전히 세상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한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중풍병자를 들것에 들고 주님을 뵈올 수 있도록 애쓰는 사람들이 깜깜한 밤, 더욱 빛나는 별들로 우리들 주변에, 이 어두운 세상에 머물고 있다. 세상에 희망을 주는 이들이 있다. 절망하지 않는 한, 언제나 길은 있다. 힘없고, 가난하지만, 빛을 잃지 않으면, 그 빛을 지닌 사람들이 모이고 모이면, 지난날 광화문 광장을 촛불 하나 하나가 모여 밝히고 마침내 대통령 탄핵을 이루어냈듯이, 그렇게 희망은 우리들에게 다시 온다. 그러니, 이 힘든 현실에서도 우리 절망하지 말자. 절망 따위에 굴복하지 말자. 오늘 복음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