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찾습니다

가톨릭부산 2024.07.02 15:37 조회 수 : 34

호수 2820호 2024. 7. 7 
글쓴이 윤미순 데레사 
사람을 찾습니다
 
 

윤미순 데레사
남천성당 · 수필가
 
   요즘 들어 거의 하루에 한 번씩, 어느 날은 두어 번씩 사람을 찾는 문자가 들어온다. ‘인근에서 배회 중인’ 혹은 ‘사람을 찾습니다.’로 시작하여 나이, 키, 옷, 신발뿐만 아니라 신체 특징까지도 나열해 놓고 있다. 고령사회인 만큼 치매 어르신들이 많은가 생각했지만, 연령을 보면 그것도 아니다. 청년, 중학생, 심지어 초등학생 나이까지 있어 안타까운 마음에 길거리를 지날 때 혹시나 하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기도 한다. 길을 잃어 집을 못 찾는 것인지 집을 나가버린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그 반면에 게임에 빠져서, 혹은 학교생활에 적응이 힘들어서, 일정한 직업 없이 주식을 한다는 등 여러 이유로 방콕!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집 안에 있으면서도 대부분 식구들과 대화를 기피하고 산다. 그들은 청년이 되고 중장년이 되어서도 지속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워 더욱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걸고 산다. 집에 있으되 집을 잃어버린 것은 마찬가지다.
 
   ‘왜 집을 잃어버리는 것일까’ 생각하다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웠다. 딱히 갈 곳도 없으면서 집이 싫다면, 집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이 보기 싫다면, 때론 공포스럽다면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가까이 마주 보는 사람들이 쳐다보고 싶지 않을 때 어디를 바라보아야 할까. 
 
   하루는 글쓰기 강의실에 지적이고 세련된 육십 대의 아주머니가 오셨다. 한 달쯤 지나서 글을 써오셨는데 의사가 되어 자랑스럽기 그지없었던 딸이 병원을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였다. 눈이 짓무르도록 몇 년을 지내다 겨우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강의실 안은 ‘저런 저런’하는 한숨 섞인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그랬다. 때가 되면 우리는 등 떠밀지 않아도 모두가 집을 떠나게 되어 있다. 그러니 떠나기 전까지 한 집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욕심을 줄이고 모두가 행복하도록 죽을힘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떠나지 않아도 되는 집’이 있다. ‘하느님의 집’이다. 매주 미사를 드리며 성령과 함께 예수님과 성모님의 삶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그지없는 사랑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내가 가는 길을 잃었다가도 언제나 달려 들어갈 수 있는 집. 강가에서 윤슬에 사로잡히거나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들에 사로잡혔다가도 ‘아참, 나에겐 더 아름다운 집이 있지’ 하고 뛰어 들어올 수 있는 집이 있다. 수많은 잘못에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는 너그러움과 위로와 사랑이 충만하여 기댈 수 있는 따뜻함이 감싸고 있다. 오늘도 사람 찾는 문자가 들어왔다. 집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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