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1일 금요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기념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 보물이 있는 곳에 당신의 마음도 있으니,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 »고 말씀하신다.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는 이 말씀을 두고, 오랜 세월 동안 돈 좋아하는 일부 성직자들, 수도자들, 일부 평신도들께옵서는 « 성당에 갖다 바쳐라, 예배당에 갖다 바쳐라. 그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과 같다 »면서, 하늘과 성당과 예배당을 동일시하기도 했다.

교회 역사 속에는 하늘 곧 하느님 나라를 교회와 동일시했던 시대가 실제로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100년간 이 나라 이 땅의 교회의 역사를 조금만 공부해보면, 그런 부끄럽기 짝이 없는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 한국 가톨릭 교회는 그저 살아 남기 위해, 지난 시절 수많은 박해로 인해 상처받은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한다는 명분 아래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불의했던 일본의 권력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반민족적 종교 집단으로 행세했다.

한국 가톨릭 교회는 조국의 독립운동에 공동체로서 적극적으로 가담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오히려 가톨릭 교회는 독립운동과는 동떨어진 채로, 일본의 개 노릇을 자처했다. 몇몇 한국 가톨릭 교회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안중근 도마도 있었고,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항거하는 몇몇 신부님들도 있었다고 말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었을 뿐, 한국 가톨릭 교회의 이름으로 일어난 독립운동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 당시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 나라와 교회를 동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라가 식민지가 되건 말건, 민족의 운명이 어떻게 되건 말건, 교회만 번성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1930년대 일본이 본격적으로 군국주의 침략의 길로 들어섰을 때에, 일본은 각종 수탈 정책을 펴대고, 빈부간의 격차를 더더욱 심화시켰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과 맞물려, 당시에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성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자신들의 이념적인 기반으로 삼기도 했다. 그러자 일본은 반공을 국시로 삼고, 공산주의자들을 마구 잡아 들였다. 일본의 반공 정책에 교회도 동조했을 뿐 아니라, 대놓고 친일 앞잡이 노릇을 했다. 공산주의자들은 하느님이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무신론자들이었고, 교회의 적이었기 때문이었다.

1942년, 한국인 최초의 주교는 창씨 개명을 권고하고, « 유구한 황국 2천 600년 역사가 밟아 오고 가톨릭 근 2천년 연륜을 통일시킨 위대한 원리는..,….무언 복종과 일치 협력이라며…….국가의 시국을 돌파하기 위하여 행정 당국에서 지시하는 바는 절대 신뢰하고 무언 복종하라 »고, 또 « 태평양 인도양을 제압하고 있는 것은 일찍이 인류의 전쟁 역사에 볼 수 없는 위대한 사실이다. 이는 위로 천황 폐하의 어능위 하에 황군 장병들의 끓는 충성과 총후 국민의 일심협력함의 당연한 결과로써 우리는 사변 5주년을 당하여 실로 감사함을 마지않는다 »하며, 이를 위해 신자들에게 « 비록 제국의 불패 태세가 확립되었을지라도 이로 만족하여 방심하지 말고 오로지 성전 목적 달성에 정신과 힘을 통째로 »바리차고 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고, 한국 가톨릭 교회는 미군정과 밀월을 즐겼다. 미군정으로부터 갖은 특혜를 다 받았다. 6.25 전쟁이 터졌을 때에도, 한국 가톨릭 교회는 악으로부터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길이랍시고, 동족상잔의 비극과 전쟁의 참상을 슬퍼하고, 회개를 촉구하기 보다는 드디어 악의 화신이요, 하느님께 정면으로 대드는 무신론자, 빨갱이들의 나라, 악의 나라를 쳐부술 기회가 왔다고 망발을 해댔다. 이 땅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몰아 내는 것은 하느님께 대항하는 무신론자들을 쳐부수는 일과 동일하기 때문에, 6.25는 성전이라고까지 말하던 이들도 있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국가의 주요 요직에 나가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자랑거리로 여겨졌다. 뿐만 아니라, 돈 많고, 힘있는 사람들을 천주교 신자로 만드는 것이 마치 지상과업인양 여겨지기도 했다. 높은 자리에 천주교 신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돈 많은 사람들이 신자가 되면 될수록, 가톨릭 교회가 더더욱 번성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하느님 나라도 강건해지고, 하느님 사업을 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얄팍한 상술이었으며, 마귀에게 영혼을 팔아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짓거리였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참으로 부끄럽게도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까지도 한국 가톨릭 교회 안에서 크나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교회를 하느님 나라와 동일시하는 무지막지함은 결국 2천년전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던 그 예수를 또다시 죽이는 일이다. 교회에 나가기만 하면, 하느님 만날 수 있고, 교회에 나가기만 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찍이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교회를 두고 « 순결한 창녀 »라고 했다. 창녀처럼 추하고 죄스럽지만 우리를 외면하거나 저버리지 않으시고, 있는 그대로 변함없이 품어주시는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이 함께 하는 장이 바로 교회다.

‘거룩하면서도 늘 정화되어야 할 교회’(ecclesia sancta et semper purificanda), « 자기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어 거룩하면서도 언제나 정화되어야 할 교회, 끊임없이 참회와 쇄신을 추구해야 할 교회 »(교회 헌장 8장 참조), 지난 100년 간 일어났던 부끄러움과 오욕의 역사에 대해 « 재를 뒤집어 쓰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 회개할 줄 아는 교회가 되기를 오늘 내내 기도해야겠다.

 이 기도에 여러분도 함께 하지 않으시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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