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2일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4복음서의 여러 곳에서 예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보기에 분명히 유대교의 율법과 규정을 어기신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죽을 위험에 처하지 않은 병자들에게 치유의 은혜를 베푸시는 등 안식일에 금지된 노동을 자주 하셨고, 정결규정도 가볍게 여기셨다(마태 12,1-8.10-14; 15,1-2). 또 중풍병자를 고쳐 주시면서 « 당신은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고 하심으로써 하느님께만 유보된 죄에 대한 용서의 권한을 침해하셨다(마태 9,2-6). 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율법체계를 온통 뒤흔들어 놓기도 하셨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으며, 천지가 사라져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고 하신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인가?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예수님의 율법 개념과 율법학자들의 개념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율법학자들은 ‘모세오경’(토라)과 ‘십계명’을 가장 중요한 율법으로 생각한다. 또한 이 율법을 구체적으로 준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구전口傳 율법’도 율법의 범주에 포함시켜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
구전율법은 율법과 전통에 관한 율법학자들의 구전해설을 말한다. « 탈무드 »의 « 미슈나 »가 이런 구전율법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 미슈나 삿바트 »(안식일법 규정)에는 39개의 안식일에 금지된 노동목록이 적혀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율법학자들은 365개의 금령(禁令)과 248개의 행령(行令) 등 613개의 구체적인 규정을 제시하였다. 이들 중 하나라도 어기면 율법을 어긴 것으로 여겼다. 이렇게 율법학자들은 십계명과 모세오경을 구체적으로 해설한 규정과 세부사항을 철저하게 글자 그대로 지켜 내는 것을 율법의 완성으로 보았다.
그러나 예수께서 생각하시는 율법은 율법학자들의 생각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예수께서는 구체적인 세칙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정신, 곧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 경천애인敬天愛人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삶 자체를 율법의 완성으로 보셨다. 율법과 예언서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은 견고했고, 부동했다. 그분은 율법 하나 하나와 그 일 점 일 획에 담겨있는 하느님의 정신과 그 참뜻을 밝혀 주셨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아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 율법과 예언서의 말씀을 하나도 없애지 않고 완성하는 길이었다. 율법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예수께서는 율법의 일 점이나 일 획에 집착하지 않고 이를 심화시키시고, 때로는 과감하게 이를 폐기시키기도 하셨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성당 안에서만, 기도할 때에만, 미사 참례할 때에만, 잠시 예수님을 생각하고, 일상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따라서 살지 못한다면, 더 정확하게 말해서, 내가 또 하나의 예수가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느님 앞에서 눈 가리고 아웅하기 밖에는 되지 않는다.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가 왔다고 선포하시면서, 회개하라고 하셨을 때, 그 회개는 그저 단순히 고해성사 몇 번 더 보고, 미사 참례 더 잘하고, 교무금, 헌금 더 잘 내라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전환하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율법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 예수의 길을 걷는다는 것, 예수를 따른다는 것,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피하고 싶은 때도 있고, 도망 치고 싶은 생각이 간절히 일기도 하는 길이다. 그 길을 홀로 걸어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 교회 공동체다. 서로 힘들 때에 지혜와 용기와 힘을 북돋워 주고, 위로와 위안을 주는 교회 공동체다. 그 교회 공동체는 바로 다름 아닌 지금 이 미사에 함께 하고 있는 내 옆 사람, 내 뒷사람, 내 앞사람이다. 서로 서로 위로하고, 힘을 북돋워 주자. 그렇게 살아가면 언젠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이미 하늘 나라, 하느님 나라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서로서로를 챙겨주고, 서로서로 격려하라고 채근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