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에서 만난 평범한 성자
박선정 헬레나
남천성당 · 인문학당 달리 소장
‘탈출기’라는 용어 대신 ‘출애굽기’로 익숙했던 ‘애굽’은 ‘이집트’를 지칭한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하던 그 시대에도, 3천 5백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는 건, 그 뜨거운 땅을 가로지르며 유유히 흐르고 있는 나일강일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 강을 어머니의 품으로 삼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아브드도 그중 한 사람이다.
아브드는 관광객들을 위해 낡고 오래된 배를 운전하면서 살아가는 나일강 변 토박이다. 처음 만난 날도 그는 여기저기가 헤진 갈리베이아를 입은 채 익숙한 솜씨로 배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잔심부름하고 있었다. 소년은 아브드의 등 뒤에 숨은 채 수줍은 미소로써 인사를 건넸다. 소년의 이름은 이슬람교도의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인 모하메드다. 인연이었는지 다음날도 같은 배를 탔다. 반가운 마음에 아브드와 인사를 나누는데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들은 어디 갔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크게 손사래를 치며, 모하메드는 자기 아이가 아니란다. 덧붙여서 비록 나이는 좀 들었지만, 자신은 결혼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총각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배가 나일강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그가 들려준 ‘총각이 아이와 함께 사는 사연’은 이러했다.
아이가 서너 살 때 아이 부모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단다.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아이는 자연스레 길거리의 거지가 되었단다. 오가다 만날 때마다 먹을 걸 챙겨줬더니 언제부턴가 아예 자기 집에 와서 살더란다. 이때부터 둘의 동행은 시작되었고 소년은 총각의 일을 배워가며 작은 뱃사공이 되고 있단다.
“그냥 내 눈에 들어온 거예요. 내가 다니는 길에, 내 눈이 볼 수 있는 데다가 신이 놓아둔 거지요. 어린 모하메드를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신의 보살핌으로 다행히 저는 일을 할 수 있고 먹을 것도 있고 잘 곳도 있지요. 나도 저 아이처럼 될 수 있었다는 것도 알아요. 그러니 나누는 것일 뿐이죠.” 사실, 아브드의 행동은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매정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함께 거친 사막을 가는 동반자의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우리는 ‘선택적 장님’으로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느님이 종종 우리의 눈앞에 무언가를 가져다 놓지만, 우리는 원하는 것만 보고 들으면서 세상이 어둡다고 한탄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만난 나일강의 뱃사공은 다른 언어, 다른 피부색, 다른 종교를 가진 ‘평범한 성자’였음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