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일(나해) 강론 - 씨앗과 열매
주임신부 2024. 6. 16, 덕계성당
우리 본당은 올해로서 설립 25주년, 즉 ‘은경축’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부산과 울산, 그리고 양산 지역을 아우르는 이곳, 많은 분의 기도와 정성으로 성당을 새롭게 지어 봉헌한 이곳, 공기 좋고 조용한 이곳에 자리 한 우리 본당입니다. 그동안 많은 평신도분들과 사제들이 우리 본당을 스쳐 갔고, 신영세자들도 탄생시켰으며, 현재의 우리는 본당을 중심으로 모여 주님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이는, 25년이라는 역사의 흐름 안에서 우리 본당이 ‘씨앗’으로서의 역할을 했기에 ‘열매’가 가능했음을 보여주기에, 고맙고도 은혜롭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오묘하신 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청하는 것을 결코 그대로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당장의 필요로 간절히 청하지만, 결코 그것을 그대로 주시지 않고,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씨앗’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 씨앗은, 내가 청하는 모든 것을 성취시켜 주는 것을 넘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고도 훌륭하게 열매를 맺게 해 주는 씨앗입니다.
부족한 제가 이곳 본당의 제13대 주임신부로 발령받아, 여러분과 함께, 여러분을 위한 봉사자로서 일하면서 필요한 게 어디 한두 가지겠습니까? 그래서 지금도 저는 주님께 많은 청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지나온 경험들을 되돌아볼 때, 주님께서는 저의 청들을 한순간에 들어주시지 않으셨고, 제가 생각한 대로 쉽게 들어주시지도 않으셨으며, 늘 기쁘고 행복한 일의 연속으로 들어주시지도 않으셨고, 또한 단지 몇몇 사람의 노력으로써만 들어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우리 각자는, 그리고 우리 가정과 우리 본당 공동체는, 하느님으로부터 ‘씨앗’을 받았습니다. 그 씨앗으로써 우리는 추수할 때를 기다리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씨앗 없는 열매만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씨앗을 뿌리고 가꾸며 거두는 농부의 수고로 인하여 농부는 자기 생각보다 더 큰 추수를 맞는 것처럼, 지금의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큰 열매의 모습을 향하고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더 큰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는 ‘안주’함이 아니라 ‘변화’해야 함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정당한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도 없겠습니다. 변화가 정당한 것이라면, 그 변화를 통해서 발전을 향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씀드리는 변화와 발전은 ‘내적’ 및 ‘외적’ 면에서의 변화와 발전을 의미합니다.
우리 본당의 주역이신 교형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씨앗에 비유하십니다. 씨앗은 ‘이미’ 성취된 것을 그 안에 지니고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우리가 받은 씨앗을 좋은 지향과 열심한 자세로써 뿌리고 가꾸며 열매 맺게 할 때, 달리 말하여 정당한 변화를 추구할 때, 우리는 씨앗으로부터 이미 출발한, 하느님의 나라를 구현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바라건대, 우리가 받은 씨앗이 큰 열매를 맺도록 합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거듭 변화하며 하느님께로 한 걸음씩 발전적으로 나아가는, 그런 은혜로운 삶을 매일 영위하길 기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