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1일 화요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세례를 받았건 받지 않았건 예수께서 말씀하신 평화의 삶에 근접한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은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마귀들을 쫓아내라고 사도들에게 명령하셨다. 그 마귀들이 영화나 공상소설, 혹은 전설의 고향에나 나오는 마귀, 악령, 귀신, 원귀 그런 것들만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 가고 있는 이 21세기에도 마귀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지 못하는 것들, 자기 잇속 차리려고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들, 생명을 살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죽이려 드는 것들, 온갖 거짓으로 사람들에게 거짓 평안을 이야기하고, 희망 고문을 가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바로 21세기 마귀들이다.
거기에다 우리나라의 종교 현실을 감안해볼 때, 또 다른 마귀도 존재한다. 우리 나라는 오래 전부터 종교 다원사회다. 종교 다원 사회에서 자신이 믿는 종교만이 최고의 종교이고, 다른 종교는 없어져야 한다라는 생각은 아주 위험하다. 인간의 가치를 폄하하고, 훼손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과 똑같은 방식의 신념(구원관)을 가져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다른 방식의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예외 없이 지옥의 불구덩이로 던져진다고 믿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함께 숨쉬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불편하고 곤혹스러운 일이다.
요즈음은 그런 일들이 별로 없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단군 동상 훼손 사건들이 마치 유행처럼 일어난 적이 있었다. 오직 예수만이 인간과 세상의 구원자라는 믿음은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고, 누구나 가져야 할 것이지만, 오직 예수만이 믿을 바가 되고, 나머지는 다 없애 버려야 한다는 생각은 믿지 않는 이들과 다른 종교인들이 볼 때, 무례하기 짝이 없는 것이고, 그런 생각이 실제 행동으로 드러나는 무모한 폭력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 갈등은 하느님에 대한 오만 불손이다.
요한 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요한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서는 그가 자기들과 함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것을 하지 못하게 했다며 예수께 자랑하듯 말하는 대목이 있다. 요한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사랑 받는 제자였다. 예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 하였을 때 동행하였고(루카 9, 28), 야이로의 딸을 살려 주실 때도 동행하였으며(마르 5, 37), 예수님께서 성전 파괴를 예고하신 후에 재난이 닥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다(마태 24, 3-14).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번민에 싸여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실 때(마르 14, 33)에도 같이 있을 만큼 베드로와 야고보와 함께 총애를 받는 제자였다.
하지만, 요한은 그의 형제 야고보와 함께 예수께 «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 (마르 10, 37)라고 부탁할 정도로 욕심도 당찼던 인물이었다. 훗날 하느님 나라가 들어서면 한 자리를 해야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요한이 자기들과 함께 다니지도 않는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서 자신들의 스승님의 이름을 팔면서 마귀를 쫓아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요한에게 이 일은 자기 밥 그릇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하느님 나라가 들어서면 한 자리를 차지할 꿈을 꾸고 있는데 잘못하다가는 그 한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그 위기감 말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예수께서는 관심과 관용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요한의 옹졸한 태도에 « 막지 마시오.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소.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오. » 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요한의 배타적인 태도에 대한 거부이며, 마음을 열고, 모든 이를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누군가가 목이 말라서 물 한잔 달라고 할 때, 누군가가 밥을 굶어 밥 한 끼 먹을 수 있게 해달라 할 때, 누군가가 자본의 폭압 아래에서 신음할 때, 누군가가 반생명의 문화 아래에서 죽어갈 때, 누군가가 불의 앞에서 쓰러져 갈 때, 그가 교인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먼저 물을 것인가 ? 아니면, 먼저 손을 내밀 것인가 ? 혹시 손 내밀기가 귀찮아서, 도와 주기가 귀찮아서, 그러는 것은 아닌가 ?
예수님의 12사도들에게만 마귀들을 쫓아내라는 명령이 주어진 것이 아니다. 지금의 이 나라, 이 땅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명령이고 우리들의 삶의 자리 한가운데에서 내려진 명령이다. 마귀를 쫓아내야 한다. 하루 빨리 한시라도 지체하지 말고, 마귀를 쫓아내야 한다. 마귀에게 억압당하고, 마귀에게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그 고통의 한 순간, 한 순간은 너무나도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