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9일 연중 제10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1년 365일 중에는 기념일이 참 많다. 그러한 기념일 중에 여성의 날도 있다. 3월 8일이다. 그런데, 남성의 날은 없다. 왜 없을까? 365일 중에 딱 하루만 여성의 날이고, 나머지 364일은 모두 남성의 날이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은 절대로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 현실이다. 남녀 평등을 이야기하고, 여성 상위 시대라고 떠들어 대고, « 일식씨, 이식군, 삼식 놈 »이라는 말들도 존재하지만, 여전히 이 세상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불평등한 세상이다.
여성과 남성의 동등성은 세상의 시작이요,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에 의해 마련되었지만, 인간의 역사 속에서 여성과 남성은 동등하기보다는 오히려 불평등하게 존재한다. 모계사회에서는 여성이 더 우월한 존재로,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남성이 더 우월한 존재로 여겨져 왔다.
하느님을 전하고, 하느님을 믿는 교회 안에서조차도 남녀의 불평등은 존재한다. 적어도 가톨릭 교회 안에는 여성 성직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의 주님이신 예수께서 친히 여성은 그 어느 누구도 ‘사도’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늘날까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여성들이 지도적인 역할을 맡거나 ‘사제’로 서품될 수 없는 근본 이유다. 예수께서 여성 사제직을 원하셨더라면, 당신의 어머니나, 당신 주변의 여성 제자들에게 사제직을 허용하셨겠지만, 그러나 예수께서는 어떤 여자에게도 사제직을 허용하지 않으셨다는 것이 여성 사제직 불가의 이유인 셈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오늘 복음이 읽히고 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의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라는 복음이 선포되고 있다.
신약성경의 복음서들은 마리아 막달레나와 여성들이 빈무덤을 확인한 첫 증인으로서 남성 제자들과 사도들에게 예수의 부활을 증언했다고 전한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 맨 처음으로 발현하셨다고 전한다. 어쩌면 이 여성들이 없었다면, 이들의 부활 선포가 없었다면,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유다의 배반과 자살 이후 사도들은 유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서 투표를 준비하면서 사도의 필요조건을 정했다(사도 1,21-22참조). 이 요건에는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예수님을 따랐고, 부활을 목격했으며, 파견과 선포의 명령을 받은 것이 포함되었다. 이 요건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사실 예수의 십자가 상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 보았고, 예수의 무덤에 찾아갔다가 빈무덤을 발견하고 돌아왔던 여성들뿐이었다. 그 여성들이야말로 예수의 생애를 끝까지 놓치지 않고 함께 했으며, 부활의 첫 증인들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도들은 그 여자들을 자신들과 동등하게 여기지 않았다. 루카 복음 24,11에서 분명히 그 사실이 나온다 : « 사도들에게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그 이야기가 헛소리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사도들은 그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
여성들은 그리스도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 바로 부활 사건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와 12세기 전후의 수많은 저자들은 마리아 막달레나를 사도들을 위한 사도라고까지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단 한 사람도 예수의 12사도에 들지 못했다. 심지어 유다의 빈자리를 메꾸었던 사람도 여성이 아닌 남자 마티아였다. 여성들도 남성 못지않게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죽음을 넘어서까지 예수께 충실했지만, 초대교회의 여성들 중에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신약 성경에 언급된 몇몇 여성들만 중시할 뿐, 다른 여성들은 망각 속에 묻혀버렸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평등이라는 것은 기회의 균등을 의미한다. 교회도 평등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교회 내에는 모순적이게도 성직자에 있어서 만큼은 여전히 여성들에게 기회조차 박탈시켜 놓고 있다. 가톨릭 교회 내에서 여성은 남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자신의 태생적인 한계를 수긍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셈이다.
평등이라는 것은 기회의 균등을 의미한다. 교회도 평등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교회 내에는 모순적이게도 성직자에 있어서 만큼은 여전히 여성들에게 기회조차 박탈시켜 놓고 있다. 가톨릭 교회 내에서 여성은 남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자신의 태생적인 한계를 수긍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셈이다.
오늘 나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 적어도 여성에게도 최소한 부제품이 허용이 되어서, 차츰 차츰 성직에서도 여성이 자리를 잡기를 기도하고 싶다.
이 기도에 여러분들도 동참해 주시길 간곡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