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일 월요일 강미노 마르셀라 장례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지난 금요일, 5월의 마지막날, 성당에 있는 모든 벽걸이 선풍기를 떼어내 날개에 묻은 뽀얀 먼지들을 씻어내고, 재설치하는 작업을 끝내고, 함께 일했던 분들과 점심식사를 하는 중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전화로 들려오는 로마나 자매님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고, 얼른 점심을 먹고 크리스티나 수녀님과 함께 부리나케 동아대학교 병원으로 달려갔다.
 
11층 병실로 가서, 여러 번 마르셀라 자매님의 손을 쥐어주면서 종부성사를 집행했다. 오른손에는 온기가 남아 있었지만, 왼손은 점점 식어가고 있었고, 이마와 얼굴에는 열이 있었다. 교황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으로 마르셀라 자매님에게 전대사를 주고, 병자성유를 발라드리고, 안수를 해드리면서, « 주님, 당신 딸을 맡겨드립니다. 생명도 죽음도 모두 당신의 것이오니, 살려 두시려면 건강을 허락하시고, 데리고 가시려면,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게 데리고 가소서 »라고 속으로 기도했다.
 
같은 날 저녁 8시 40분경, 마르셀라의 형부인 필립보 네리 형제님이 병자성사 해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문자를 보내주셨다. 그리고 밤 11시가 조금 넘어갈 무렵, 연도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마르셀라 자매님의 선종소식을 들었다. 삶과 죽음은 우리네 인간의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것이라는 성경의 말씀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태어나는 때와 죽음의 때는 하느님만이 정하실 수 있고, 하느님만이 아신다는 이 진리를 또 한번 온몸으로 경험했다.
 
엊그제 세상을 떠난 강미노 마르셀라 자매님은 강미정 프란체스카 로마나 자매님의동생이다. 윗사람을 떠나 보내는 것도 참으로 견디기 힘든 슬픔이요, 아픔이지만, 아랫사람을 떠나 보내는 것은 슬픔과 아픔에 먼저 가지 못한 미안함까지도 겹치게 되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아내를, 그리고 동생을 하느님께 먼저 돌려보내야 하는 크나큰 슬픔 속에 계시는 루이스 형제님과 로마나 자매님에게 삼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마르셀라 자매님의 유가족들과 평소 친분을 가지고 계신 모든 분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이 시간 하느님께서 마르셀라 자매님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시고, 당신의 품 안에 너그러이 받아 주시도록 우리 모두 함께 정성을 모아 기도하자는 말씀도 드리고 싶다.
 
마르셀라 자매님은 홀연히 언니보다, 남편보다 먼저 저 먼 길을 떠났다. 이 세상 사람들이 더 이상 어쩌지 못하는, 함께 할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자매님의 떠남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유가족들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한다.
 
마르셀라 자매님의 장례미사를 거행하고 있는 바로 지금, 마르셀라 자매님의 유가족들이 온 힘을 다해 견뎌내고 있는 지금의 슬프고도 고통스러운 느낌은 그렇게 빨리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고통은 순식간에 들이닥치지만, 지나가기는 참으로 더디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아픔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님처럼 유가족들과 마르셀라 자매님의 친구들, 지인들 가까이 오래 오래 머물렀다가 이제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슬며시 떠나갈 것이다.
 
유가족들과 지인들은 어느 날, 마르셀라 자매님과의 추억을 떠올리거나, 자매님과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들추어 볼 때, 또 마르셀라 자매님이 남기고 간 것들, 옷이며, 장신구며, 여러 가지 물건들을 하나 하나 정리할 때, 혹은 마르셀라 자매님을 위해 기도할 때, « 왜 ? 무엇 때문에 ? »라는 질문과 맞딱뜨리게 될 것이다.
 
« 주님, 왜 내 아내입니까 ? 왜 내 동생입니까 ? 왜 우리 엄마입니까 ? 왜 하필이면 내 처제입니까 ? 왜 우리 이모입니까 ? 왜 그렇게 되어야 합니까 ? 왜 마르셀라가 벌써 죽어야 합니까 ? 왜 우리는 아직도 살아 있습니까 ? 왜 마르셀라가 그런 병에 병에 걸려야 했고, 왜 다른 사람은 아닙니까 ? 왜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고통과 슬픔이 있습니까 ? 왜 행운의 기회가 공평하게 나누어지지 않습니까 ? 도대체 하느님이 계시기나 합니까 ? »
 
우리가 고통을 겪을 때나 사랑하는 가족, 혹은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을 대하면서 극도의 괴로움을 겪을 때, 이런 질문들을 던지는 것이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 마르셀라 자매님의 장례미사 시간, 이 장례미사를 주례하는 사제로서 나는 한가지 진실만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 여러분의 아내요, 동생이요, 처제요, 이모요, 친구인 마르셀라의 고통과 죽음은 결코 하느님이 주시는 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어떤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나쁜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고통과 좌절, 방황과 죄, 잘못, 인간적인 부족함과 비인간적인 잔인함을 결코 원하지도 않으신다. 고통과 죽음에는 그 어떤 시원스러운 대답도 있을 수 없다.
 
차라리, « 함께 겪는 고통 »과 « 함께 하는 죽음 자체 »가 대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하느님, 하느님, 어찌 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물었다. 그러나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이 일생 동안 « 아빠 », « 아버지 »라고 부르며 기도해왔던 그 하느님은 침묵하셨다.
 
이 침묵이 하느님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예수께서는 «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내어 맡기나이다 »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버림받았다는 절망에서 내어맡김이라는 신뢰로의 빠스카가 바로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졌다. 아버지 하느님은 아들 하느님의 마지막 대화 상대자, 침묵의 대화 상대자였다. 아빠 하느님은 아들의 고통과 죽음에 침묵으로 동참하셨다. 아들과 함께 고통을 겪는 아버지, 아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아버지였다. 그 아버지 하느님을 십자가 아래에서 아들을 지키고 있던 어머니 마리아가 드러내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죽었던 아들을 하느님은 죽음에서 다시 일으키셨다. 이 일련의 과정은 하느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진리를 드러내 주었다. 그렇다. 우리 삶의 시작과 마침에는 언제나 하느님이 계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그분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슬픔에 잠긴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신앙인들은 이 지상에서 머물던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서 영원한 거처가 마련됨을 믿는 사람들이다. 이 믿음에 힘입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천상에서 마르셀라 자매님은 살아 있다고, 떠나간 사람을 기억하고, 떠나간 사람을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마르셀라 자매님은 살아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자. 마르셀라 자매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와 언제나 함께 계셨던 하느님 아버지, 자신의 삶 전체 속에서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아파했던 하느님 아버지를 믿었다. 하느님의 손길은 마르셀라 자매님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도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기에 원망스럽고, 억장이 무너질 것 같지만, 이제 원망을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맡기고, 하느님께서 마르셀라 자매님을 천상복락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또 그렇게 될 것임을 희망하자.
 주님, 강미노 마르셀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죽은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평안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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