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0일 연중 제8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 살려달라 ! » 외치면, 아무도 집 밖으로 안 나오고, « 불이야 ! »라고 해야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온다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실 것이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 매정한 세상이고, 비정한 세상이라는 것을 은연 중에 암시하고 있는 말이다. 매정하고 비정한 세상을 드러내는 말이 신약성경에 나온다. «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마태 11,17).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세상의 부조리나 세상의 악에 대해서 애써 눈길을 주지 않으려 하고, 침묵하며 눈 뜬 장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침묵하며 눈 뜬 장님으로 살아가라며, 때로는 회유하고, 때로는 협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이 불편해하니까 그러라고 하기도 하고, 혹은 세상의 부조리나 세상의 악에 동조하거나 공조하고 있는 이들이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까 저어하는 마음으로 그러기도 한다.
구약시대, 맑은 눈을 가졌던 참된 예언자들은 세상의 부조리나, 세상의 악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았다. 그들은 목숨을 걸기까지 하며 진실과 진리를 알렸고, 충언과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 때문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힘있는 자들이나 높은 위치에 있는 자들로부터 압박과 고통을 당해야 했고, 어떤 예언자들은 목숨을 잃기도 했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목이 터질 정도로, «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라고 외쳤던 소경 바르티메오의 간절한 소망을 들으신 주님께서는 그의 눈을 뜨게 해주셨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눈 뜬 장님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스스로 자신이 눈 뜬 장님임을 깨닫고, 새로운 눈을 뜨게 해달라는 소망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르겠다. 눈 뜬 장님으로 살아가라는 이들이 자기들이 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 바로 세상의 죄, 세상의 악에 대한 공조요, 방관이요, 증산임을 깨닫는 것 자체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르겠다.
눈 뜬 장님으로 살고 있는 이들의 무지몽매와 똥고집, 그리고 눈뜬 장님으로 살라는 이들의 위선과 갑질이 우리 사는 세상을 자꾸만 비정하고, 매정한 세상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세상에서 시대의 예언자가 된다는 것, 그 예언자의 편에 선다는 것은 하느님 편에 선다는 것이요, 소경 바르티메오의 바램처럼, 더 이상 장님으로 살지 않겠다는 것이요, 세상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으로 바꾸려는 것이지만,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위태하긴 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보자. 다시 한번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자. 분명 참된 용기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는 의기소침해 하려는 이들의 팔을 붙잡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실 것이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