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요일 성모의 밤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어머니’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느낌들, 자식들을 위해서 모든 것들을 다 내어주고,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래서 때로는 무식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그런 열정들, 그런데 이러한 느낌들과 열정들이 지극히 당연시되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사실은 이 세상의 많은 어머니들을 힘겹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춘천교구 신자, 심순덕 데레사 자매님이 쓴 시를 언젠가 강론대에서 읊어 드린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홀로 대충 부엌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차가운 수돗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없는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보고 싶으시다고...
외할머니 보고 싶으시다고,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알았던 나..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
아!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에게서 흉내 낼 수 없는 사랑을 배웁니다
이제 와서 한 마디 외쳐 본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나는 5월이 참 부담스럽다. 계절의 여왕이니, 온갖 신록들이 만발하는 달이니, 하는 찬란한 수식어들과 함께 성모성월이다 보니, 교회 곳곳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칭송하고, 마리아의 구원사적인 의미, 믿음의 여인으로서의 마리아의 모범적인 모습들, 등등을 숱하게 듣고 보고, 생각하고 실천하라 하기에 나는 5월이 참으로 부담스럽다.
모정을 느끼고, 생각하고, 그려보며,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믿음과 겸손의 덕을 본받으며, 마리아를 따라 살아가자는 그런 말들이 너무나도 부담스럽다. 고단수를 써서, 어머니라는 단어를 숱하게 남발하면서 나로 하여금 어머니라는 이름의 원천적인 감정을 자극하게 하고,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신앙 생활에 충실하고, 교회의 삶에 충성을 다하게 하고,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사랑을 이 세상에 펼쳐 나가라고 하는 이 5월이 잔인하게 다가오기까지 한다.
우리는 지금 성모의 밤을 보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강론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마리아의 삶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 모두 잠시 눈을 감고 마리아를 떠올려 보자.
우리는 지금 성모의 밤을 보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강론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마리아의 삶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 모두 잠시 눈을 감고 마리아를 떠올려 보자.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에게, « 은총을 가득히 입은 이여, 기뻐 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라고 인사하였을 때에,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었을 것이고, «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이를 가지게 될 것이다 »라는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지는 않았을까 ? 인간적인 생각들, 계산들을 모두 뒤로 다 물리고는 «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라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대답했을 때에, 마리아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
자식이 서른이 다 되도록 장가도 가지 아니하고, 사람들을 모아서 전도 여행을 다닐 때에, 들려오는 소리, « 당신의 아들이 미쳤나 봅니다 », 그 소리를 듣고는 하던 일 다 팽개치고, 친척 몇을 데리고, 아들에게 갔을 때에, «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입니까 ?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이들이야말로,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입니다 »라는 말을 듣고는 얼마나 섭섭해했을까 ?
그 아들이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을 때에, 빌라도가 누구를 놓아 줄까라고 물었을 때, 다른 모든 사람들은 « 바랍바 »를 놓아 달라고 했지만, 오직 어머니인 마리아만은 « 내 아들 예수요 »라고 목놓아 울부짖지는 않았을까 ?
아들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 여인이여, 이 사람이 여인의 아들입니다. »라는 말을 했을 때, 그 어머니, 마리아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 아들의 싸늘한 주검을 부여잡고, 목놓아 울지도 못했던 그 어머니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
자식이 서른이 다 되도록 장가도 가지 아니하고, 사람들을 모아서 전도 여행을 다닐 때에, 들려오는 소리, « 당신의 아들이 미쳤나 봅니다 », 그 소리를 듣고는 하던 일 다 팽개치고, 친척 몇을 데리고, 아들에게 갔을 때에, «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입니까 ?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이들이야말로,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입니다 »라는 말을 듣고는 얼마나 섭섭해했을까 ?
그 아들이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을 때에, 빌라도가 누구를 놓아 줄까라고 물었을 때, 다른 모든 사람들은 « 바랍바 »를 놓아 달라고 했지만, 오직 어머니인 마리아만은 « 내 아들 예수요 »라고 목놓아 울부짖지는 않았을까 ?
아들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 여인이여, 이 사람이 여인의 아들입니다. »라는 말을 했을 때, 그 어머니, 마리아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 아들의 싸늘한 주검을 부여잡고, 목놓아 울지도 못했던 그 어머니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
우리 이제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우리 앞에 모셔져 있는 저 마리아상을 바라보자.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사도들의 어머니로서,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영광 찬란한 모습 뒤에 있는 헤아릴 수 없는 눈물과 통곡을 보고, 들어보자.
이 세상에는 아기들을 위한 자장가 노래들은 참으로 많다. 그러나,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는 거의 없다. 2024년 올해의 성모의 밤은 어머니 마리아를 우리가 위로하고, 그분의 힘듦을 가늠해보면서, 그분의 일들을 잠시 우리가 짊어져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라는 정호승 에제키엘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강론을 맺고자 한다.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잘 자라 우리 엄마
할미꽃처럼
당신이 잠재우던 아들 품에 안겨
장독 위에 내리던
함박눈처럼
잘 자라 우리 엄마
산 그림자처럼
산 그림자 속에 잠든 산새들처럼
이 아들이 엄마 뒤를 따라갈 때까지
잘 자라 우리 엄마
아기처럼
벗겨진 꽃 신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