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생명을 지키고, 생명을 성장 성숙시키는 일을 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좀 더 불편하게 살고, 좀더 천천히 살고, 좀더 숙고하면서 살아야 가능한 일이다. 세상의 논리와는 반대되는 길을 걸어가는 길이다. 편한 길이 아니라, 불편한 길이다. 21세기 자본주의 사회는 부자가 되려면 이렇게 살라 한다: ‘돈 되는 일에 시간과 열정과 재력을 쏟아 부어라, 미래에 닥칠 식량위기니, 환경위기니, 기후위기 하는 것은 미래에나 맡기고, 현재에 충실하라’. 그러나 이러한 식의 인간형은 분명 하느님의 영의 방향과 정반대의 방향이다.

천주교 신자나 개신교 신도나 세례를 받는 순간 성령을 받는다. 세례 때에 받았던 성령을 따라 살려고 하면, 성령은 세례 받은 사람들을 편안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분은 끊임없이 불편하게 한다.

성경이 증언하는 영은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힘이다. 성령은 승자독식이라는 세상의 논리에 고개 끄덕이면서 ‘힘없는 우리가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하며, 자포자기하듯 살아가는 사람들, ‘ 좋은 게 좋은 거지. 불편한 거 보다는 편한 낫지 않나?’ 하며, 현실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생명마저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처럼 거들먹거리는 돈의 위력 앞에 잔뜩 주늑 들어 있는 사람들, ‘세상 떠들썩하게 하고, 골치 아픈 문제나 일으키고, 온갖 잡음 일으키게 하는 것보다는 그저 주어진 인생, 조용조용 살다가 갈 때가 되어서 가면, 그만 아닌가’하며, 안전 제일주의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성령은 또한 하느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다는 주님의 말씀에 « 세상 몰라도 한참을 몰라요 »라며 한 손에는 하느님을, 다른 한 손에는 재물을 움켜쥐고 있으면, 세상으로부터 성공한 사람이라는 소리도 듣고, 신자 숫자 늘리기에도 아주 좋은 효과를 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한다.

악령에 깃들인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그들은 예수님에게 « 하느님의 아들님, 왜 우리를 못 살게 구십니까? 왜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까 ? »라고 악다구니를 썼다. 악령에 깃들인 사람들이 단순히 악한 영에 사로잡혀 살아간 사람들, 마녀, 뱀파이어같은 사람들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세상의 논리에 철저하게 복종하며, 회개할 꺼리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 진실보다는 뻐꾸기의 그럴싸한 말들에 눈과 귀를 열어 둔 채, 눈이 있어도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고, 귀가 있어도 진실을 들으려 하지 않으며, 생명을 돈으로 환산하면서,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힘없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나 몰라라 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악령에 깃들인 그들은 어두움 속에서 세상의 그 어떤 눈물이나 한숨이나, 아픔에도 신경 안 쓰고, 그저 마음 편하게 ‘나 몰라라’ 하면서 살아온 사람들, 그래서, 그런 자기네들을 빛으로 꺼내려 하는 예수님께 가만히 내버려 달라고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수의 영, 곧 성령이 자기네들을 귀찮게 하고, 불편하게 하리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문을 모두 잠가 놓고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은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바들바들 떨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했던 유다인들이 자신들에게도 어떠한 위해를 가할지도 모른다는 데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 성령을 받으시오 »라고 했고, 성령으로 충만해진 이들은 이제 자신들이 숨어 지냈던 곳을 박차고 일어나 죽음과 악의 권세에 저항하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시작했다.

다락방에 숨어있던 제자들을 세상으로 박차고 뛰쳐나가 사람이 사람에게 복음이 되게 하는 힘을 주시는 성령은 우리들이 세례를 받을 때에 받았던 바로 그 성령이다. 그 성령은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이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시는 분이시지만, 그 불편함이 사람으로 나서 사람답게 살다가 사람으로 죽을 수 있는 진리의 길임을 알려주시고, 그 길을 걷도록 우리에게 힘과 지혜와 용기를 주시는 분이시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성령에 힘입은 사람만이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한다고, 그 성령은 여러 가지 활동을 일으키시고, 공동선을 지향하게 하시며,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게 하신다고 했다. 세례를 받으면서, 모든 신자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성령을 받아 마신다. 그런데, 성령을 받긴 했지만, 그 성령을 펄펄 살아 꿈틀거리게 하느냐, 아니면, 그저 내 안의 위로자, 내 찌든 삶의 위안자, 내 슬픈 마음에 평안만을 가져다 주는 자로만 머물게 하느냐의 선택은 세례 받은 사람의 몫이다. 이 선택은 평생 단 한번의 선택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 매일 해야 할 선택이다.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다시 또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이다.
성령은 밴댕이 속아지 같은 분이 아니라,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께로 다시 돌아오는 이들을 따뜻이 맞이해주시는 분이심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나 성령을 향한 선택과 결단의 삶을 살 수 있다. 오늘 성령 강림 대축일은 나에게 « 이 가능성을 언제나 무상으로 주시는 성령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 »라고 외치게 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성령 강림 대축일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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